한때 무섭게 치솟던 금값이 최근 들어 횡보하고 있습니다. 이란 전쟁이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국제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상승이 금 가격을 누르고 있습니다. 전쟁 뉴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금값의 진짜 변수를 짚어봅니다.

이번 전쟁이 특별한 이유: 지정학적 리스크
원래 국제 분쟁이 발생하면 금은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가격이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금값은 빠르게 반등했고,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금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 국면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휴전 논의가 나왔다가 무산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에 금가격이 출렁이는 변동성이 심화되고 있지만, 금값은 생각보다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금값이 4,500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장면도 연출됐습니다.
그 핵심 이유는 호르무즈 해협입니다.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해협을 두 나라가 봉쇄하면서 세계 유가 전체를 건드렸습니다. 단순한 국지전이었다면 세계 거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겠지만, 브렌트 유가가 급등하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유가 폭등은 곧 인플레이션 상승을 의미하고, 인플레이션이 오르면 미국 연준(Fed)의 금리 인하는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 심한 경우 연준이 금리 인상에 나설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시장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금값을 올리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입니다. 기본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 금은 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이란 전쟁의 경우에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압도하는 거시 경제 변수들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유가 폭등이라는 변수, 그로 인한 물가 상승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경제 지수가 세계 경제를 억누르면서 달러 강세와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금이라는 자산에는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두바이 금 거래소의 폐쇄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세계 4대 금 거래소는 뉴욕 선물 거래소, 런던 현물 거래소, 상하이 선물 거래소, 그리고 두바이 금 거래소입니다. 중동 지역의 금 거래를 주로 담당하는 두바이 금 거래소가 이번 전쟁 통에 문을 닫으면서 거래량과 수요가 동시에 줄어들었고, 이것이 금값이 힘을 못 쓰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동일한 사건이 금값을 올리는 동시에 눌러버리는 복합적인 상황, 이것이 지금 금 시장의 본질입니다.
금값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 실질 금리와 페드워치가 말해주는 것
금값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무엇일까요? 많은 투자자들이 전쟁 뉴스나 트럼프 발언에만 집중하지만, 전문가들이 실제로 주목하는 지표는 따로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의 국채 금리, 그 중에서도 인플레이션을 제외한 실질 금리 지수입니다. 두 번째는 페드워치(Fed Watch)의 금리 상승 확률, 세 번째는 유가이며, 여기에 달러 인덱스와 인플레이션 상승 요인이 더해집니다.
실질 금리의 개념부터 정확히 짚어보겠습니다. 실질 금리란 명목 금리에서 물가 상승률, 즉 인플레이션을 뺀 값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국채에서 5%의 이자를 받더라도 같은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이 3% 올랐다면 실제로 투자자가 얻는 실질 이자는 2%에 불과합니다. 이 실질 금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국채가 바로 TIPS, 즉 물가연동국채입니다. TIPS는 명목 금리에서 인플레이션을 뺀 실질 금리를 곧바로 반영하기 때문에, 이 지표 하나만으로 현재 금리 환경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2025년 5월 28일 현재 미국의 10년 만기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는 2.06%입니다. 이렇게 미국의 실질 금리가 올라가면 금 가격은 하락하고, 실질 금리가 내려가면 반대로 금 가격은 상승합니다. 금은 이자가 한 푼도 붙지 않는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실질 금리가 높을수록 국채와 같은 이자 수익 자산이 금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고, 투자 자금은 금에서 멀어집니다. 현재 TIPS 금리 그래프를 보면 굉장한 횡보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금가격이 횡보세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페드워치는 연준이 기준 금리를 어느 선으로 가져갈 것인지를 선물 시장을 활용해서 확률로 계산하는 도구입니다. 현재 로이터는 연준이 올해 안으로 0.25%포인트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약 40%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 이 확률이 50%를 넘어서는 순간, 자산 시장 전반에 걸쳐 큰 억눌림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금을 포함한 위험 자산 전반에 하방 압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또한 금은 달러의 대체 자산이기 때문에 달러 인덱스가 강세로 가면 금은 약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전쟁 상황에서 현금 확보를 위해 다른 자산을 매도하고 달러를 쌓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달러 강세는 더욱 심화되고 금에는 이중의 하방 압력이 가해집니다.
금값의 추가 변수: 인플레이션, 중앙은행 매입, 금 ETF 자금 흐름
금 가격은 실질 금리와 달러 인덱스라는 두 개의 핵심 변수 외에도 다양한 요소에 의해 움직입니다. 특히 지금과 같이 유가 폭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는 국면에서는 이 추가 변수들이 더욱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먼저 인플레이션 그 자체의 방향성입니다. 유가가 폭등하면 제조, 물류, 소비재 전반에 걸쳐 비용이 상승하고 인플레이션 지수가 높아집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인플레이션이 오를 때 실물 자산인 금의 가치가 올라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긴축 기조를 자극하는 경우 오히려 금값에 부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거나 인하를 미루면 실질 금리가 상승하고, 달러도 강세를 보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이 금의 친구인지 적인지는 연준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입니다.
두 번째는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여부입니다. 최근 수년간 각국 중앙은행들은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꾸준히 금을 매입해 왔으며, 이 흐름은 금값의 장기적인 하방을 지지하는 중요한 구조적 요인입니다. 현재 중앙은행들의 금 매입 수량이 어느 정도의 흐름을 유지하는지가 금값 전망에서 빠질 수 없는 체크포인트입니다.
세 번째는 아시아, 특히 인도 시장에서의 금 실물 수요입니다. 인도는 세계 최대의 금 소비국 중 하나로, 결혼 시즌이나 축제 시즌에 따라 실물 금 수요가 급증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수요가 얼마나 살아있는지가 금 가격의 하방 지지력에 영향을 줍니다.
네 번째는 금 ETF 자금의 흐름입니다. 금을 투자 자산으로 접근하는 투자 세력들이 금 ETF에 자금을 얼마나 넣고 빼는지가 금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금 ETF 자금이 유입되면 금값에 상승 압력이, 유출되면 하락 압력이 가해집니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 국면에서 금 ETF 자금 흐름은 투자자 심리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입니다.
결국 이번 전쟁 상황에서 금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히 '전쟁이 끝나면 오를까, 내릴까'를 넘어서야 합니다. 미국 연준이 매파적으로 변하느냐, 유가와 인플레이션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느냐, 중앙은행과 아시아 실물 수요가 얼마나 버텨주느냐, 금 ETF 자금이 이탈하느냐 유입되느냐. 이 모든 변수를 종합적으로 읽어낼 수 있어야 금 투자에서 흔들리지 않는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금 가격이 최고점을 경신한 뒤 주춤하는 지금의 국면은, 전쟁이라는 단일 변수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거시 경제의 충돌 결과입니다.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유가 폭등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연준의 긴축 기조를 자극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금을 밀어 올리는 힘을 상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TIPS 실질 금리와 페드워치를 꾸준히 모니터링하며 신중한 대응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