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하면서 글로벌 금융 질서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겨울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니어스 법안과 온체인 금융 전략은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한 핵심 무기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겨울과 희소성, 그 오해와 진실
2026년은 비트코인의 4년 주기상 계절적 겨울에 해당합니다.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한 암호화폐 시장 전반이 긴 침체기를 보내고 있으며, 아무리 긍정적인 호재가 쏟아져도 다른 블록체인 프로젝트들 역시 각광을 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전 세계적인 AI 관련 열풍으로 유동 자금이 AI 섹터로 쏠리는 현상도 이 침체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이자율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라간다는 소식까지 겹치면서 비트코인 같은 위험 자산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이 갖는 근본적인 가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희소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의 스톡-투-플로우 비율이 66대 1인 데 비해, 비트코인은 111대 1에 달하며 2년 후에는 220대 1로 더욱 희소해집니다. 이런 자산은 역사상 유례가 없습니다. 공급이 코드에 의해 수학적으로 결정되며, 어떤 권력도 이를 임의로 늘릴 수 없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의 가치 저장 기능은 금을 압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비트코인이 받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양자 컴퓨터로 인한 보안 위협입니다. 양자 컴퓨터가 발달한다고 해서 비트코인이 직접 해킹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초창기에 비트코인이 가치를 가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장난삼아 채굴하다가 잃어버린 비트코인이 약 200만 개에서 300만 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자 컴퓨터는 마치 해저에서 보물선을 인양하듯이 이 초창기 물량을 공짜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비트코인 커뮤니티에서는 초창기 물량을 동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비트코인의 철학적 핵심은 '코드 이즈 로(Code is law)', 즉 코드가 곧 법이라는 원칙입니다. 초창기 물량을 동결하자니 이 원칙을 위반하게 되고, 동결하지 않자니 누군가가 수백만 개를 한꺼번에 손에 넣어 가격이 폭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 방향에 따라 비트코인의 성격과 향후 위상이 결정될 것입니다. 비트코인 겨울을 단순한 시장 사이클로만 보지 말고, 이러한 근본적인 철학적 논쟁의 결과물로도 읽어합니다.
지니어스 법안과 달러 스테이블 코인, 탈달러의 역설적 해법
달러의 위기는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약 10년 전부터 미국은 달러 무기화 전략을 구사해 왔습니다. 달러망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금융망 전체를 통제하면서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국가를 스위프트(SWIFT)망에서 퇴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절정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 중앙은행의 해외 자산을 동결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조차 이 결정에 강력히 반대했는데, 이 조치가 오히려 탈달러를 촉진할 것이라는 현명한 통찰이었습니다. 실제로 이후 인도, 브라질,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러 나라에서 탈달러 움직임이 가속화되었고, 2023년에는 미국 국회에서 달러 지배력의 위기라는 청문회까지 열렸습니다.
이 위기에 대한 미국의 해법이 바로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입니다. 지니어스 법안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성장해온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미국의 공식적인 국가 전략으로 제도화한 것입니다.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시장 점유율은 이미 99%를 넘어섰습니다. 개별 국가의 엘리트들은 탈달러를 선택할 수 있어도, 일반 시민들은 자국 화폐의 인플레이션과 각종 규제를 피해 자발적으로 달러를 선택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전략적 핵심은 개별 국민 국가를 우회하는 데 있습니다. 인도의 엘리트 계층이 탈달러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인도 시민들은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직접 달러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를 통해 국가 차원의 달러 견제를 우회하면서 글로벌 시민들에게 직접 달러를 전달하고, 이를 미국의 부채 위기 극복 수단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채권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자산 시장과 결합하면 온체인 자산 시장, 즉 리얼 월드 에셋(RWA)이라고 불리는 자산 토큰화 시장이 열립니다. 나이지리아의 청년이 카페에서 미국에 상장된 AI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세상입니다. 만약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기축 통화 역할을 하는 자산 토큰 시장이 열리면, 전 세계 유동 자금이 AI 회사, 채권, 회사채 등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미국 자산으로 몰려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지니어스 법안에 국가적 의지를 쏟아붓는 이유입니다.
온체인 금융 패권과 BRCA 법안, 미국의 진짜 속셈
지니어스 법안이 통과되고 1년 반의 유예 기간을 거쳐 발효를 앞둔 상황에서, 미국의 진짜 쟁점은 클레리티 법안, 그중에서도 그 안에 조용히 포함된 BRCA(Blockchain Regulatory Certainty Act) 법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달러 스테이블 코인의 이자 지급 허용 여부가 쟁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온체인상에서 활동하는 머신, AI, 그리고 그것을 만든 프로그래머에 대한 법적 면책 여부가 핵심입니다.
BRCA 법안은 온체인 프로그램과 그것을 개발한 사람들에게 면책을 부여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22년 토네이도 캐시 사건은 이 논쟁의 배경을 잘 보여줍니다. 북한이 자금 세탁에 이용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토네이도 캐시를 동결하고, 개발자 로만 스톰을 기소했습니다. 로만 스톰은 "내가 감옥에 가도 토네이도 캐시는 돌아간다"는 말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연상시켰습니다. 이는 코드 이즈 로(Code is law) 철학과 국가 법 집행 사이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민주당은 엘리자베스 워런을 중심으로 이 면책 조항 삭제를 위해 수십 차례 수정 조항을 제출했지만 모두 부결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멘스 레아(Mens Rea)', 즉 죄의식을 갖고 만들었느냐의 문제입니다. 프로그래머가 자금 세탁 용도임을 의식하지 않고 만든 코드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을 면제하자는 주장인데, 몰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이 논쟁이 중요한 이유는 표면적인 이자 지급 문제를 훨씬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면책 조항이 통과되면, 이자 지급이 성문법으로 금지되어 있더라도 이자를 지불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하면 사실상 스테이블 코인에 이자를 얼마든지 줄 수 있는 구조가 생깁니다. 더 나아가, 앞으로 온체인상에서 활동할 AI와 머신, 그리고 그것을 설계한 프로그래머와 기업들이 미국 땅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됩니다.
미국이 온체인에 진심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란의 테더 지갑을 즉시 동결한 사례가 보여주듯,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테더사는 미국의 지시에 복종합니다. 전 세계 온체인 프로젝트와 프로그래머들이 미국 시장이 가장 크기 때문에 미국의 말을 따르는 구조입니다. 미국은 이 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막을 수 없는 온체인 흐름을 자국 안으로 끌어들여 통제 가능한 구조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설계하는 온체인은 매우 미묘한 이중 구조입니다. 인도, 중국, 한국, 유럽은 통제하지 못할 만큼 탈중앙화되어 있어야 하고, 동시에 미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간섭하고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중앙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완전한 야생의 비트코인보다, 회사와 사람이 보이는 이더리움이 미국 입장에서 더 편안한 파트너입니다. JP모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삼성 모두 이더리움과의 호환을 원하는 상황에서 이더리움은 사실상 글로벌 온체인 표준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그 흐름이 지금 심상치 않습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 전략은 미국의 탈달러 위기에 대한 역설적인 해법이자, 온체인 금융 패권을 구축하려는 정교한 국가 전략입니다. 처음에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를 부정했던 미국이 이제는 어느 나라보다 앞서 이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기축 통화 역할을 하는 자산 토큰 시장이 열릴 때, 구글과 삼성이 원하는 이더리움 기반의 표준이 자리를 잡을 때, 그 시장의 중심에는 여전히 미국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