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워런 버핏이 한국에서 하나의 회사를 통째로 샀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삼성전자, 현대차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대구 외곽 산자락의 공장 이름을 듣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 낯선 이름의 뿌리를 살펴보니,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무심하게 잊고 살았는지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워런 버핏이 대구 산골 공장에 ?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의문이 들었습니다. 코카콜라, 질레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투자하는 사람이 왜 대구 산골까지 두 번이나 전용기를 타고왔을까.
그 공장 이름이 대구텍입니다. 여기서 만드는 물건은 초경합금 절삭공구입니다. 초경합금(超硬合金)이란 텅스텐 카바이드를 주원료로 소결(燒結)해 만든, 열에 강하고 극도로 단단한 금속 소재입니다. 쉽게 말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들을 두부 자르듯 깎아내는 칼날인 셈입니다.
이 칼이 없으면 자동차 엔진, 비행기 부품, 인공관절, 반도체 장비가 전부 설계도로만 남습니다. 제 경험상 어떤 기술이든 "없으면 라인이 서는" 소재가 가장 무서운 해자를 가진 법인데, 절삭공구가 딱 그렇습니다. 완제품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작지만 없으면 공장 전체가 멈추니, 한번 거래를 튼 공장은 공급업체를 잘 바꾸지 않습니다.
버핏이 본 건 그 작은 쇠조각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설계가 뛰어나도 마지막에 깎아내는 관문을 못 넘으면 제품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는 구조, 즉 산업 전체의 이빨 역할을 하는 자리를 본 겁니다. 대구텍은 그 자리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회사입니다(출처: Berkshire Hathaway 주주서한).
국가 수출 60%의 대한중석
이 공장의 뿌리는 대구가 아니라 강원도 산속에 있습니다. 1916년, 강원도 영월 상동의 땅속에서 텅스텐 광맥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어르신 세대에서 중석(重石)이라 불리던 그 금속입니다. 상동 광산은 단일 광산 기준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였고, 1952년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기업 대한중석이 이 광산을 기반으로 설립됩니다.
그 규모가 얼마나 컸냐면, 전쟁 직후 나라가 온통 잿더미이던 시절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약 60%를 이 회사 하나가 벌어들였습니다. 삼성전자가 지금 우리 경제에서 하는 역할을 그 시절에는 대한중석이 혼자 하고 있었던 겁니다. 1964년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한 그 역사적인 성적표 안에도 이 텅스텐의 몫이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가장 놀랐던 건 박태준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1964년 만성 적자에 허덕이던 대한중석의 사장으로 부임한 박태준은 단 1년 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놓습니다. 그리고 그 박태준이 이후 포항종합제철, 지금의 포스코 초대 사장이 됩니다. 포스코를 세울 때 종자돈의 25%도 대한중석에서 나왔습니다. 강원도 산속에서 캔 돌덩이가 대한민국 중공업의 심장을 함께 세운 겁니다.
공교롭게도 대한중석이 설립된 바로 그해 1952년, 지구 반대편 이스라엘 갈릴리의 낡은 헛간에서도 쇠 깎는 칼을 만드는 작은 회사 하나가 문을 엽니다. 이름이 이스카(ISCAR)였습니다. 당시 두 회사는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이 우연한 동갑내기 인연이 수십 년 뒤 결정적인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 1916년: 강원도 영월 상동에서 텅스텐 광맥 발견
- 1952년: 대한중석 설립 (공기업), 같은 해 이스카도 이스라엘에서 창업
- 1950년대: 대한중석, 국가 전체 수출의 약 60% 담당
- 1964년: 박태준 사장 부임, 1년 만에 흑자 전환
- 1968년: 포항종합제철 설립 종자돈의 25%를 대한중석이 부담
몰락과 버핏의 선택
1980년대 후반부터 중국이 텅스텐을 국제 시장에 헐값으로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귀한 금속이 하루아침에 흔해빠진 물건이 됐습니다. 상동 광산에서 캐는 비용이 파는 값보다 더 나가는 구조가 된 거죠. 이런 원가 역전 현상은 아무리 훌륭한 경영진이 있어도 버텨낼 수 없는 종류의 위기입니다. 결국 1994년 상동 광산은 문을 닫습니다.
같은 해 대한민국 공기업 민영화 1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대한중석은 거평그룹에 팔립니다. 상징적인 첫 자리를 하필 이 회사가 차지한 겁니다. 그러나 거평그룹은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를 넘기지 못하고 부도가 납니다. 그 아래 있던 대한중석도 1998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사실상 임자 없는 신세가 됩니다.
우리가 이 회사의 가치를 몰랐던 게 아닙니다. 제 생각에 그 시절의 우리는 알면서도 지킬 힘이 없었습니다. 온 국민이 장롱 속 금붙이를 꺼내들고 나오던 급박한 상황에서 산골 공장 하나를 끝까지 붙들고 있을 여력은 없었으니까요.
그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이 공장에 손을 내민 곳이 이스카였습니다. 독일 태생 유대인 스테프 베르트하이머가 창업한 그 회사입니다. 1998년 이스카는 대구의 초경합금 사업을 인수하고 회사 이름을 대구텍으로 새로 짓습니다. 이스카가 속한 IMC 그룹은 이후 전 세계 절삭공구 시장 정상을 다투는 자리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2006년. 이스카 회장 에이탄 베르트하이머가 워런 버핏에게 편지를 씁니다. 두꺼운 사업계획서도, 변호사들이 잔뜩 붙은 계약서 뭉치도 아니었습니다. 종이 한 장 반.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버핏은 그 편지를 받고 약 일주일 만에 매입을 결정합니다.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가 미국 밖에서 이 규모의 인수를 단행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지분 80% 인수 금액은 약 4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조 원이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나머지 20%도 약 20억 달러를 더 얹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출처: Berkshire Hathaway 공식 사이트).
30년 만의 상동광산, 텅스텐
이 이야기가 단순한 과거 회고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2025년, 중국이 텅스텐을 전략 물자로 지정하고 수출 허가제를 도입했습니다. 전 세계 텅스텐 공급의 약 80%를 쥐고 있는 나라가 문을 잠그자 국제 텅스텐 가격은 사실상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자원 무기화(resource weaponization)란 특정 국가가 핵심 원자재 수출을 정치·경제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중국이 2010년 일본과의 분쟁 당시 희토류 수출을 조이던 방식과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이번엔 텅스텐이 그 자리에 놓인 겁니다. 텅스텐은 초경합금 절삭공구뿐 아니라 AI 반도체 제조 공정에도 쓰이는 핵심 소재여서, 자동차 공장부터 반도체 팹(fab)까지 사정권에 들어갑니다.
이 살벌한 상황의 한가운데서 제가 진짜 소름이 돋았던 장면이 있습니다. 30년 전 문을 닫고 잡초만 무성하던 강원도 상동 광산이 2025년 드디어 다시 불을 켠 겁니다. 캐나다 자원 기업 알몬티 인더스트리스(Almonty Industries)가 주도하고, 그 한국 법인의 이름이 알몬티 대한중석입니다. 그 이름이 30년 만에 같은 장소로 돌아온 겁니다.
상동 텅스텐은 품위(品位), 즉 광석에서 유효 성분이 차지하는 비율이 세계 평균의 두 배가 넘는 고품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이 이 광산의 텅스텐을 자국 방산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지 조용히 타진해 올 정도입니다. 한국 정부도 텅스텐을 국가 필수 핵심광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버크셔 쪽도 2024년 대구에 반도체용 텅스텐 관련 시설 투자를 추가로 단행했습니다. 세계 어디든 공장을 세울 수 있는 회사가 매번 다시 대구를 고른다는 사실, 그것이 버핏이 이 산골에서 본 것의 실체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구텍이 워런 버핏 소유라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2006년 IMC 그룹 지분 80%를 약 40억 달러에 인수했고, 2013년 나머지 20%도 약 20억 달러를 추가해 100% 완전히 인수했습니다. 대구텍은 현재 버핏이 지분을 100% 보유한 대한민국 유일의 회사입니다.
Q. 초경합금 절삭공구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A. 초경합금 절삭공구는 자동차 엔진, 비행기 부품, 인공관절, 반도체 장비 등 거의 모든 정밀 부품을 깎아내는 데 쓰입니다. 이 공구가 없으면 어떤 설계도도 실물 제품이 될 수 없습니다. 완제품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없으면 공장 전체가 멈추기 때문에, 한번 거래를 시작한 공장은 웬만해선 공급업체를 바꾸지 않습니다.
Q. 상동광산이 30년 만에 다시 열린 이유가 뭔가요?
A. 2025년 중국이 텅스텐을 전략 물자로 지정하고 수출 허가제를 도입하면서 국제 텅스텐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전 세계 공급의 약 80%를 중국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출 대안 광원이 절실해졌고, 품위가 세계 평균의 두 배를 넘는 고품질 광석을 보유한 상동광산이 자연스럽게 다시 주목받게 된 겁니다.
Q. 버핏이 편지 한 장 반만 보고 4조 원을 결정했다는 게 말이 되나요?
A. 버핏 본인의 말로는 그 편지에서 "인격과 재능이 종이를 뚫고 튀어나왔다"고 했습니다. 사업 숫자보다 경영진의 됨됨이를 먼저 읽는 그의 투자 철학과 일치하는 결정입니다. 실제로 버크셔 해서웨이가 미국 밖에서 이 규모의 인수를 처음 단행한 사례였다는 점에서, 이 편지가 역사적인 의사결정을 이끈 계기가 된 건 분명합니다.
결론
여기서 제게 남은 감정은 뿌듯함 반, 씁쓸함 반입니다. IMF 때 우리가 손에서 놓아버린 물건의 진짜 값어치를 지구 반대편 사람이 먼저 알아봤다는 사실이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그때 놓은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뼈아픈 실수였는지는 지금도 단정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버핏이 두 번이나 대구 산골까지 날아온 이유는 손바닥 위의 그 쇠조각이 아니었습니다. 100년을 버텨낸 기술과 사람, 세상 어디에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자리, 그리고 그 자리를 지켜온 저력을 본 겁니다. 상동광산이 30년 만에 다시 불을 켠 2025년, 이 이야기는 이제 옛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내일 손에 쥐는 스마트폰과 타고 다니는 차 안에 이 100년짜리 저력이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