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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현물 가격이 8만 달러일 때, 무기한 선물 시장에서는 같은 자산이 8만 5천 달러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이 5천 달러의 괴리가 바로 무기한 선물이라는 구조의 핵심을 꿰뚫는 숫자입니다. 만기도 없는 선물이라니, 그게 어떻게 현물 가격과 연동될 수 있냐고요. 그런데 살펴볼수록 이건 단순한 파생상품 하나가 아니라 금융시장의 구조 자체를 바꿀 설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기 없는 선물, 어떻게 가격을 잡아두나
선물(Futures)이란 미래 특정 시점에 특정 가격으로 기초자산을 거래하겠다는 계약입니다. 여기서 기초자산이란 주식, 원자재, 이자율 상품처럼 파생상품의 바탕이 되는 실물 혹은 금융 자산을 말합니다. 전통적인 선물에는 반드시 만기가 있습니다. 3개월짜리 원유 선물이라면 3개월 후 실제 원유 가격과 선물 가격이 일치하면서 계약이 종료됩니다. 이 만기라는 장치가 선물 가격이 현물에서 지나치게 멀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약 10년 전 비트맥스(BitMEX)라는 거래소가 이 만기를 아예 없애버린 퍼페추얼 스왑(Perpetual Swap), 즉 무기한 선물을 처음 구현했습니다. 비트코인은 원유처럼 실물 인도가 목적이 아니다 보니 굳이 만기를 둘 이유가 없었고, 만기별로 유동성이 분산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아이디어의 이론적 토대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 교수가 먼저 제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Nobel Prize).
만기가 없으면 가격이 현물에서 한없이 벗어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펀딩피(Funding Fee)입니다. 펀딩피란 선물 가격이 현물보다 높을 때 롱(매수) 포지션 보유자가 숏(매도) 포지션 보유자에게 8시간마다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입니다. 선물 가격이 현물보다 지나치게 높아지면 롱 포지션을 유지하는 비용이 커지므로 자연스럽게 매수 쏠림이 완화되고, 가격은 현물 쪽으로 수렴하게 됩니다. 반대로 선물이 현물보다 싸면 숏 보유자가 롱 보유자에게 비용을 냅니다. 제가 이 구조를 처음 이해했을 때 솔직히 무릎을 쳤습니다. 만기라는 물리적 장치 없이 인센티브만으로 가격을 현물에 묶어두는 방식이 꽤 정교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 무기한 선물 = 만기 없는 파생상품 계약
- 펀딩피 = 8시간 단위로 롱/숏 간 비용을 정산해 가격 편차를 조율하는 장치
- 가격 수렴 원리 = 만기 대신 비용 구조로 현물 가격과의 괴리를 억제
왜 현물보다 선물 시장이 더 커졌나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현물보다 선물 거래량이 더 크다는 사실은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파생상품은 실수요를 기반으로 했습니다. 원유 선물은 정유사가 가격 변동성을 헤징(Hedging)하기 위해 미리 계약하는 방식이었고, 스왑(Swap)은 서로 다른 통화나 이자율 구조를 교환하는 실질적인 목적에서 나온 상품이었습니다. 헤징이란 미래 가격 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미리 방어하기 위해 반대 방향의 포지션을 취하는 전략입니다.
그런데 무기한 선물은 조금 다른 곳에서 수요가 만들어졌습니다. 레버리지(Leverage)를 활용해 적은 증거금으로 큰 포지션을 구축하고, 하락장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숏(Short) 포지션을 편하게 취하고 싶다는 수요가 핵심이었습니다. 레버리지란 보유 자금보다 몇 배 큰 규모로 거래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인데, 이 덕분에 거래량이 현물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불어났습니다.
거래량이 늘어난다는 건 단순히 시장이 커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유동성(Liquidity)이 풍부해지면 매도자는 더 좋은 가격에, 매수자는 더 낮은 가격에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시장 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빠르게 수렴하는 가격 발견 기능도 강화됩니다. 실제로 DEX(탈중앙화 거래소) 형태의 무기한 선물 거래소 상위 10위 안에 SK하이닉스가 꾸준히 올라와 있고, 한때 거래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는 점이 제게는 알파고 모먼트처럼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한국 증권사 계좌 없이 SK하이닉스에 포지션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기존 금융의 장벽을 허물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제도권 진입과 24시간 금융의 현실
코인베이스(Coinbase)가 최근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주식 기반 무기한 선물 서비스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미국 본토에서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한 무기한 선물 서비스를 내국인에게 제공하겠다는 시도는 이것이 처음입니다. SEC란 미국의 증권 시장을 감독하는 연방 기관으로, 주식 관련 금융 상품의 승인권을 쥐고 있습니다(출처: 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파생상품 성격도 있기 때문에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 절차도 추가로 거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이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 같은 탈중앙화 파생상품 거래소를 규제로 막기보다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쓰이는 온체인 금융 생태계가 커질수록,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까지 달러 패권 아래 묶어두려는 전략입니다. 제가 채권 트레이더로 현업에 있을 때도 경험했지만, 미국 시장이 휴장인 날이면 유럽 시장을 참고하려다가 결국 별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미국의 금융 영향력은 다른 어떤 시장과도 비교가 안 됩니다. 그 영향력을 온체인 세계에서도 유지하겠다는 욕심은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습니다.
한편 구조적 리스크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오라클(Oracle)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오라클이란 현실 세계의 가격 데이터를 블록체인 위로 가져오는 연결 장치입니다. 7월 말 SK하이닉스 무기한 선물 시장에서 실제로 이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프리마켓에서 딱 한 주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에 체결되면서 그 가격이 오라클 마켓 프라이스에 반영됐고, 수백억 원대 강제 청산이 연쇄적으로 발생했습니다. 레버리지가 극도로 걸린 상태에서 참조 가격 하나가 흔들리면 청산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구조는, 24시간 시장이 확대될수록 왝더독(Wag the Dog) 현상 즉 파생 시장이 오히려 현물 시장을 흔드는 현상이 더 빈번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습니다. 다중 오라클 방식으로 데이터 소스를 분산하거나 가격 스무딩 기법으로 이상값을 걸러내는 기술적 보완이 계속 시도되고 있지만, 이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아직 이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무기한 선물과 일반 선물의 가장 큰 차이가 뭔가요?
A. 일반 선물에는 만기가 있어서 그 시점에 현물 가격과 자동으로 수렴합니다. 무기한 선물은 만기가 없는 대신 펀딩피라는 비용 구조로 가격 편차를 조율합니다. 포지션을 원하는 기간만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레버리지 거래나 숏 포지션 목적에 훨씬 적합합니다.
Q. 펀딩피는 항상 내야 하나요?
A. 선물 가격이 현물보다 높은 상황(콘탱고)이면 롱 포지션 보유자가 숏 보유자에게 8시간마다 펀딩피를 냅니다. 반대로 선물이 현물보다 낮으면 숏 보유자가 냅니다. 시장 방향에 따라 받는 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강세장에서 오래 롱을 들고 있으면 펀딩피 누적 비용이 상당해질 수 있어서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Q. 국내 투자자도 DEX 무기한 선물 거래소를 이용할 수 있나요?
A. 기술적으로는 스테이블코인과 지갑만 있으면 별도 계좌 개설 없이 접근 가능합니다. 다만 국내 금융 규제상 파생상품 거래에 해당할 수 있어 법적 지위가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용 전에 국내 법령 및 세무 처리 방식을 별도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Q. 왝더독 현상이 국내 주식 시장에도 실제로 영향을 미치나요?
A. 이미 영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규장이 끝난 뒤 역외 DEX에서 형성된 SK하이닉스 무기한 선물 가격이 다음 날 국내 시초가에 선반영되는 사례가 확인됐습니다. 무기한 선물 거래량이 현물의 수십 배에 달하는 자산이라면 이 영향은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결론
무기한 선물은 비트코인 파생상품으로 시작해 주식, 원자재, 주가지수까지 기초자산을 확장하며 전통 금융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코인베이스의 SEC 신청, NYSE의 온체인 거래소 준비, 하이퍼리퀴드의 제도권 편입 논의를 보면 24시간 글로벌 거래 환경이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화될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적 전환은 일단 임계점을 넘으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확산됩니다.
한국 시장도 결국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국내 거래소와 금융당국이 어떤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가 앞으로 수년간 국내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결정할 것 같습니다. 무기한 선물 시장 전체를 이해하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앞으로의 투자 판단에서 꽤 큰 차이를 만들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