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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번 상승은 저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9월, 10월은 횡보할 거라고 반쯤 체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며칠 사이에 시장이 확 바뀌었거든요. 찾아보니 크게 세 가지 구조적인 이유가 맞물려 있었는데, 규제 완화 신호, 베센트 재무장관의 장기채 바이백, 그리고 채굴자들의 AI 전환이 그것입니다. 각각 따로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아도, 하나로 보는 순간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규제완화: 법보다 먼저 움직인 행정부
일반적으로 크립토 시장은 클래리티 법안 같은 입법 통과를 기다려야 본격적으로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생각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실제로 벌어진 일을 보면서 그 전제가 꼭 맞지는 않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입법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였습니다. 무기한 선물 거래 허용, 특정 조건 충족 시 토큰 공모(ICO) 증권 등록 면제, 그리고 CFTC 위원장이 "클래리티 법안 통과 전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은 다 하겠다"라고 직접 발표한 것이 연달아 터졌습니다. 여기서 무기한 선물 거래란 만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파생상품 거래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투자자가 원하는 시점에 자유롭게 포지션을 유지하거나 청산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미 나왔던 재료들이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건,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시장 반응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는 순간, 그 메시지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랩 용어로 하면 '딜리버리'가 다른 겁니다. 가사가 같아도 전달력이 좋으면 꽂히듯이요.
다만 한 가지 냉정하게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행정부 조치는 행정부가 바뀌면 언제든 뒤집힐 수 있습니다. 이게 장기 호재로 자리잡으려면 결국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단기 숨통을 틔워준 것과 구조적 안정을 만든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장기채 바이백: 베센트의 세 가지 신호
베센트 재무장관의 장기채 바이백 소식은 솔직히 "그게 비트코인이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살펴보니 연결고리가 보였고, 이런 거시경제 신호가 크립토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장기채 바이백이란 정부가 이미 발행한 만기가 긴 국채를 시장에서 다시 사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 행위가 세 가지 맥락으로 보입니다.
첫째, 국채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재무부가 장기채 시장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가 시장의 자연스러운 수요가 충분하지 않다는 방증으로 읽힙니다. 실제로 한국은행을 포함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채권보다 금 매수를 늘리는 흐름이 뚜렷합니다(출처: 한국은행). 채권이 예전만큼 안전 자산으로 인식되지 않으면, 그 자금 일부가 금과 비트코인으로 흘러갑니다.
둘째, 단기채 의존도를 높이는 전략은 연준에 대한 무언의 압박입니다. 정부가 단기 금리에 의존하는 구조로 전환할수록, 연준이 금리를 높게 유지하면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집니다. 베센트의 메시지는 사실상 "금리 좀 내려줘, 그래야 우리가 파이낸싱 하기 쉬우니까"라는 신호로 읽힙니다. 적어도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기대감이 생긴 겁니다.
셋째, 단기채 수요처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키우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달러 등 법정화폐에 가치를 고정한 암호화폐를 말합니다. USDC나 USDT가 대표적입니다. 하이퍼리퀴드 같은 퍼프덱스(무기한 파생상품 거래소)에서 USDC 수요가 늘면, USDC 발행사인 서클이 더 많은 단기 국채를 매입해야 합니다. 하이퍼리퀴드 허용, 스테이블코인 시장 육성, 단기채 수요 확보가 하나의 정책 라인으로 묶여 있는 겁니다.
- 국채 매력도 하락 → 금·비트코인으로 자금 이동
- 단기채 의존 구조 → 연준 금리 인하 압박 신호
- 스테이블코인 수요 확대 → 단기채 흡수 구조 설계
채굴자 AI 전환: 매도 압력이 사라진 이유
이전 하락장까지만 해도 비트코인 채굴자들은 시장이 나빠지면 어김없이 물량을 쏟아냈습니다. 비트코인 하루 채굴량이 대략 450개 수준인데, 이게 대부분 시장에 나온다고 간주했습니다. 채굴 비용을 충당하려면 어쩔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이번 사이클은 달랐습니다.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AI 데이터 센터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면서, 채굴 기업들이 잉여 컴퓨팅 파워를 AI 추론(inference)에 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AI 추론이란 학습된 AI 모델이 실제로 질문에 답하거나 이미지를 생성하는 등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연산 과정을 뜻합니다. 이 연산에는 엄청난 GPU 자원이 필요한데, 채굴 업체들이 이를 임대해 주고 달러 수익을 올리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세계 3위권 채굴 풀 운영사들과 나눈 이야기를 보면, 이미 잉여 자산 상당 부분을 AI 추론에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 비트코인을 강제로 팔아야 할 이유가 줄었습니다. 현금 흐름이 다른 곳에서 들어오니까요. 갤럭시 디지털이 채굴 기업들을 인수해 AI 데이터 센터로 전환한 사례도 이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출처: Galaxy Digital).
채굴 경쟁자가 줄면 해시레이트(네트워크 연산 능력)가 하락해 악재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 생각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번 하락장을 겪어보니, 비트코인 전송 자체는 채굴 업체가 열 개든 두 개든 작동합니다. 오히려 채굴자 수가 줄면 시장에 나오는 물량 자체가 감소하고, 채굴 단가도 낮아져 더 적게 팔아도 수익이 납니다. 매도 압력의 구조적 감소입니다.
지금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섹터별 접근법
이번 상승에서 제가 흥미롭게 봤던 점은, 비트코인이 오른다고 솔라나나 이더리움이 덩달아 크게 오르지 않았다는 겁니다. 2021년 사이클과는 확실히 다른 패턴입니다. 그때는 "비트코인 오르면 알트코인 다 오른다"는 공식이 어느 정도 통했는데, 지금은 실제 매출이 나오는 애플리케이션 레이어 자산들이 선별적으로 강하게 반응했습니다.
에테나(Ethena)의 USDe,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의 HYPE, 펌프닷펀(Pump.fun) 같은 자산들이 대표적입니다. 에테나는 스스로를 스테이블코인이 아닌 '합성 달러'라고 부릅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담보로 보유하면서 동시에 동일 수량을 공매도해 가격 변동을 0으로 만드는 델타 뉴트럴(delta neutral) 전략을 씁니다. 델타 뉴트럴이란 보유 자산의 가격 등락에 관계없이 전체 포지션의 손익이 0에 수렴하도록 설계한 전략입니다. 상승장일수록 공매도 포지션을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지급하는 펀딩피(funding fee)가 커지기 때문에, 에테나 입장에서는 불마켓이 올수록 수익이 늘어납니다. 단, 하락장에서는 이 구조가 역으로 작동해 더 빨리 떨어집니다. 에테나를 들고 하락장을 버티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하이퍼리퀴드는 파생상품 거래소이면서 수익의 99% 이상을 HYPE 토큰 바이백에 사용합니다. 매출과 토큰 가치가 직접 연동된 구조입니다. 토큰 시장의 고질적 문제, 즉 플랫폼이 돈을 벌어도 토큰 홀더에게 환원이 안 된다는 문제를 이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밈코인 개별 종목 투자는 제 경험상 일반 투자자에게 맞지 않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대신 서부 골드러시 때 곡괭이를 팔았던 사람들처럼, 밈코인이 발행되고 거래되는 플랫폼인 펌프닷펀에 투자하는 접근이 구조적으로 더 안정적입니다. 특정 밈코인이 망해도 플랫폼은 계속 돌아가니까요.
- 거시경제 중심 투자자 → 비트코인 (ETF 수급 + 금 대체재 내러티브)
- 펀더멘탈 중심 투자자 → 하이퍼리퀴드 HYPE, 에테나 ENA (매출·바이백 연동)
- 밈코인 시장 배팅 → 개별 종목 아닌 펌프닷펀 플랫폼 토큰
- RWA 관심 → 온도(Ondo), 센트리퓨즈(Centrifuge) 같은 플랫폼 토큰
자주 묻는 질문
Q. 클래리티 법안이 통과 안 돼도 비트코인이 계속 오를 수 있나요?
A. 단기적으로는 행정부 조치만으로도 상승 모멘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정부가 바뀌면 이 조치들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구조적 상승을 기대하려면 입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잭슨홀 미팅 같은 거시 이벤트보다 중간선거 결과가 크립토 시장의 장기 향방에 더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Q. 채굴자들이 AI 쪽으로 가면 비트코인 네트워크 보안이 약해지는 거 아닌가요?
A. 해시레이트가 줄면 이론적으로 보안 취약성이 높아지는 게 맞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비트코인 전송 자체는 채굴 업체 수와 무관하게 작동합니다. 오히려 채굴 경쟁이 줄면 채굴 단가가 낮아지고, 채굴자들이 비트코인을 덜 팔아도 수익을 낼 수 있어 매도 압력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채굴자들도 비트코인을 완전히 버리는 게 아니라 시황에 따라 비중을 조절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Q. 에테나(Ethena)는 하락장에도 들고 있어도 되나요?
A. 에테나의 구조 특성상 하락장에서는 펀딩피 수익이 줄거나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고, 담보 자산인 비트코인·이더리움 가격도 떨어지면 전체 포지션의 리스크가 커집니다. 상승장에서 베타를 극대화하는 자산이라고 보는 게 맞고, 하락장에서도 계속 홀딩하는 전략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Q. 장기채 바이백이 스테이블코인이랑 무슨 연관이 있나요?
A. 미국 정부가 단기채 발행을 늘리면 이를 흡수할 수요처가 필요합니다. 테더(USDT)나 USDC 같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준비금으로 단기 미국 국채를 보유합니다. 스테이블코인 수요가 늘수록 발행사는 더 많은 단기 국채를 매입해야 하고, 이게 결국 미국 재무부 입장에서 단기채 수요처를 확보하는 구조입니다. 하이퍼리퀴드나 폴리마켓 허용이 단순한 크립토 장려가 아닌 재정 정책의 일환으로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결론
이번 상승을 보면서 제가 느낀 건, 크립토 시장이 더 이상 단순한 투기 시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 재정 정책, 연준의 금리 기조, 스테이블코인 수요, 채굴자들의 비즈니스 모델 변화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규제 완화, 장기채 바이백, 채굴자 AI 전환이라는 세 가지 축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생각보다 강한 상승이 나왔고, 적어도 구조적으로 이전 베어마켓과는 다른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단기 모멘텀에만 기대기보다는, 지금 시장에서 실제 매출이 나오고 그 수익이 토큰 가치와 연동되는 구조를 가진 자산에 집중하는 접근이 장기적으로 더 유효하다고 판단합니다. 잭슨홀 미팅과 중간선거 결과를 계속 주시하면서,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전략을 조정하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대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