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지갑에 17년째 움직이지 않은 110만 개, 현재 가치로 약 110조 원이 잠들어 있습니다.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비트코인을 접하면서 사토시 나카모토는 "할 피니"일 거라고 막연히 알고 있었는데, 2026년 4월 뉴욕 타임즈의 탐사보도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담백, 사토시일 수밖에 없는 이유들
뉴욕 타임즈 기자가 이 취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흥미롭습니다. HBO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던 중, 아담 백이 라트비아 리가의 공원 벤치에서 인터뷰하는 장면이 눈에 걸렸다고 합니다. 사토시 후보 이름을 하나씩 읊을 때 "아담 백" 자기 이름이 불리는 순간 동공이 흔들리고, 손이 경련하듯 움직였으며, 이걸 오프더레코드로 해달라고 감독에게 요청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취재 현장에서 사람들의 거짓말 제스처를 봐온 기자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이었겠죠.
기자의 방법론은 꽤 체계적이었습니다. 사이버펑크 메일링 리스트(Cypherpunk Mailing List, 1990년대 암호학자와 개발자들이 전자화폐와 개인 프라이버시를 논의하던 이메일 커뮤니티)를 아카이브해서 비트코인 등장 이전에 글을 올린 34,000명의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거기서 필터를 하나씩 적용해 나갔습니다.
전자화폐를 논의한 이력이 있는 사람 (620명으로 축소)
사토시처럼 문장 사이에 더블 스페이스를 사용한 사람 (562명)
영국식 영어 철자를 쓰는 사람 (434명)
its와 it's를 혼용하거나 문장 끝에 also를 자주 넣는 사람
e-mail을 email로 붙여 쓰거나, check 철자를 혼동하는 사람
이 필터를 모두 통과한 사람이 단 한 명, 아담 백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소름이 돋았습니다. 3만 4천 명을 언어 습관 하나하나로 걸러내서 한 사람이 남는다는 건, 통계적으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문체 분석(스타일로메트리, Stylometry)도 같은 결론을 가리켰습니다. 스타일로메트리란 글쓴이의 어휘 선택, 문장 구조, 반복되는 오류 패턴 등을 정량화해서 저자를 특정하는 언어학 기법입니다. 사토시가 남긴 하이픈 오류 325개를 추출해서 후보자들과 대조했더니, 아담 백이 67개로 가장 많은 일치를 보였습니다. 'proof-of-work'처럼 명사에 하이픈을 삽입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 전체 메일링 리스트 중 여덟 명뿐이었고, 러시아 전자화폐인 웹머니(WebMoney)를 언급한 사람은 네 명뿐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사람은 아담 백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배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담 백은 1997년에 해시캐시(Hashcash)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해시캐시란 이메일 스팸을 막기 위해 고안된 작업증명(PoW, Proof of Work) 방식의 알고리즘인데, 이것이 비트코인의 채굴 원리와 동일한 구조입니다. 비트코인이 나오기 10년 전에 이미 분산 네트워크, 내재적 희소성, 프라이버시 보호, 신뢰 불필요 구조 같은 비트코인의 핵심 속성을 사이버펑크 리스트에 제안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박사 논문 주제도 분산 컴퓨팅 시스템이었고, 코딩 언어도 비트코인과 동일한 C++이었습니다. 이게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이 정도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이 겹칩니다.
문체분석이 가리킨 한 사람, 하지만 남은 의문들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컨퍼런스에서 기자와 아담 백이 실제로 만났습니다. 2시간짜리 인터뷰에서 기자는 언어학 분석 결과를 하나씩 들이밀었고, 아담 백은 끝까지 "아닙니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말은 부인하면서 얼굴이 빨개지고 자리에서 계속 몸을 움직이는 바디 랭귀지가 포착됐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봤다면 어떤 판단을 내렸을지 생각해봤는데, 기자의 표현처럼 "몇 초간 사토시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이해가 됩니다.
결정적인 말 실수도 있었습니다. 기자가 사토시의 인용구 "I'm better with code than with words(말보다 코드가 낫다)"를 제3자의 발언처럼 툭 던졌는데, 아담 백이 "코드가 말보다 낫다는 사람 치고는 나는 말을 꽤 많이 했지"라고 반응했습니다. 타인의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예전에 했던 말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Clearly I'm not Satoshi, that's my position"이라는 표현에서 position이라는 단어가 포착됩니다. 사실(fact)이 아니라 입장(position)이라고 표현한 것, 이걸 의도한 선택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걸리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점입니다. 프라이빗 키(Private Key, 비트코인 지갑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암호 코드)를 공개하거나, 잠들어 있는 110만 개 비트코인 중 단 한 개라도 이동하는 행위가 있어야 진짜 증거가 됩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언어학 분석에서 2위였던 할 피니도 아담 백과 점수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점도 반론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저도 비트코인을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사토시는 할 피니라고 생각했었는데, 할 피니는 2014년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2015년에 사토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기록이 있어서 후보에서 제외됐다는 설명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사이버펑크 커뮤니티에서 전자화폐를 논의한 개발자라면 비슷한 문체와 기술 관심사를 가질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동일한 커뮤니티에서 수년간 활동한 사람들끼리는 언어 습관이 수렴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스타일로메트리가 확실한 법의학적 증거로 쓰이기엔 아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비트코인 백서 원문(bitcoin.org)을 직접 읽어보면 특유의 간결하고 학술적인 문체가 느껴지는데, 이런 문체가 한 사람에게만 고유하게 귀속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탈중앙화 네트워크가 17년째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
사토시가 누구인지보다 오히려 저에게 더 인상 깊었던 건 따로 있습니다. 창시자가 2011년에 사라진 이후로, 블록체인(Blockchain, 거래 기록을 분산된 여러 노드에 동시에 저장해 위변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술) 네트워크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제네시스 블록(Genesis Block, 2009년 1월 3일 생성된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첫 번째 블록)이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매 10분마다 새 블록이 쌓이고 있습니다.
사토시는 첫 블록에 영국 더 타임스의 헤드라인을 새겼습니다. "재무장관 은행에 대한 두 번째 구제 금융을 추진할 전망이다." 그리고 P2P 파운데이션 프로필의 생년월일도 1933년 루즈벨트가 금 보유를 금지한 날과 그 금지가 해제된 연도를 조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어느 개인이 국가 시스템에 대한 철학적 반감을 이렇게 정밀하게 코드와 날짜에 숨겨 넣었다는 것, 그게 사토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뉴욕 타임즈(NYT)의 이번 탐사보도는 바로 그 사람을 1년에 걸쳐 추적한 결과물입니다.
비잔틴 장군 문제(Byzantine Generals Problem)란 분산된 네트워크에서 일부 참여자가 악의적으로 행동할 때도 전체 시스템이 올바른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다루는 컴퓨터 과학의 난제입니다. 사토시는 작업증명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고, 아담 백은 그 해결책의 핵심 요소를 비트코인이 등장하기 10년 전부터 제안해온 사람입니다. 어느 쪽이 맞든, 이 사람이 단순한 사이버펑크 개발자가 아니라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담 백이 사토시인지 아닌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본인이 부인하고 있고 결정적인 증거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시선은 아담백에게 쏠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