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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몰리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저축조차 못 한다면,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 아닐까요. 조인트 벤처 실리콘밸리가 베이 에어리어 주민 약 1,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접하면서, 처음엔 수치가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숫자 뒤에 숨은 맥락을 들여다볼수록 이건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AI 산업 전체가 마주한 구조적 균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거비와 생활비
AI 붐이 한창인 지금, 실리콘밸리는 겉으로 보면 역대 최고의 호황기입니다. 엔비디아 주가가 연일 신고가를 갱신하고, 스타트업 펀딩 소식이 끊이지 않죠. 그런데 정작 그 한복판에 사는 주민 95%가 주거비와 생활비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제가 이 수치를 처음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90%도, 80%도 아닌 95%. 사실상 전원입니다.
더 뼈아픈 건 절반 가까운 주민이 저축 자체를 못 하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극단까지 진행된 결과입니다. 여기서 젠트리피케이션이란 고소득층과 첨단 기업들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면서 기존 주민들이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이곳은 이제 부자들만 살 수 있는 동네"라고 느낀다고 답한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저는 이 설문조사 결과를 접하면서 한 가지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구글 캠퍼스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이, 그 캠퍼스에서 만들어진 부가 자신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었다고 느끼는 상황. 빅테크 성공이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주민은 절반도 되지 않았는데, 이게 그냥 감정적인 반응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 주민 95% — 주거비·생활비 부담 체감
- 주민 48% 내외 — 저축 여력 없음
- 주민 80% — "부자만 살 수 있는 동네" 인식
- 주민 50% 이상 — 빅테크 성공이 지역에 도움 안 된다고 응답
출산율 46% 급감
제가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출산율 이야기였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출산율은 1990년대 대비 46%나 급감했습니다. 매일 새로운 스타트업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등장하는 도시에서, 정작 아이 울음소리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50세 미만의 무자녀 주민 중 절반 이상이 앞으로도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다고 했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기술도 아니고 이념도 아닌 경제적 부담이었습니다. "이 동네에서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 된다"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는 한국 대도시에서도 자주 듣는 말이긴 한데, 세계 최대 부의 집결지에서 같은 말이 나온다는 게 묘하게 씁쓸하게 들렸습니다.
오늘 행사에서 한 시 관계자가 전한 말은 더 직접적이었습니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동네 초·중·고등학교 폐교 여부를 논의 중이라고 했습니다. 기업은 흥하지만 학교는 문을 닫는 도시. 이걸 어떻게 봐야 할지, 저는 아직 단순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인구통계학적 위기(demographic crisis)라는 표현을 쓰는 분들도 있는데, 여기서 demographic crisis란 한 지역의 인구 구조가 지속 가능한 수준 이하로 붕괴되는 상황을 뜻합니다. 출산율 하락, 학령 인구 감소, 공동체 해체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죠. 실리콘밸리가 이 경로에 들어섰다는 시각도 있고, 아직 기술 산업의 고용 흡입력이 이를 상쇄할 것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전자 쪽이 더 현실에 가까워 보입니다.
데이터센터와 전력 전쟁
주민 불만이 추상적인 감정에 머물렀다면 투자자 입장에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만이 실제 인허가 저지, 공사 취소, 전력 공급 차단으로 이어지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가 이 부분을 보면서 솔직히 AI 투자 리스크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설문조사 발표회에서 산타클라라 대학교의 윤리학자 이리나 라이쿠 교수는 데이터센터가 "주민 동의 없이 삶에 밀어닥친 존재의 상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축구장 몇 개 크기의 건물이 아무런 사전 설명 없이 동네에 들어서고, 지역 전력망과 수자원을 대량으로 흡수한다는 거죠. 실제로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이런 반발 여론을 받아 데이터센터의 전기·물 사용량 공개를 의무화하는 투명성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출처: 캘리포니아 주 의회).
미국 전체로 확장해 보면 규모가 더 뚜렷해집니다. 올해 1분기에만 1,300억 달러, 상반기 전체로는 약 2,00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주민·지자체 반대로 인허가가 막히거나 취소됐습니다. 빅테크들이 AI 인프라 투자에 수백조 원을 약속했지만, 이제 그 성패는 누가 더 좋은 모델을 만드느냐보다 화난 이웃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전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는 겁니다.
소형모듈원전(SMR, Small Modular Reactor)이라는 개념이 갑자기 투자 세계에서 주목받는 것도 이 맥락입니다. SMR이란 기존 대형 원자력 발전소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제작해 특정 수요처 근처에 설치할 수 있는 차세대 원전을 말합니다. 구글과 아마존이 SMR 개발사에 직접 수조 원을 투자하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재가동 계약까지 맺었습니다. 변압기 공급이 3~4년씩 지연되고 전력 부족으로 서버 가동 자체가 어려워지자, 전력 문제를 기업이 직접 해결하겠다고 나선 겁니다(출처: IEA Electricity 2024 보고서).
바로 이 흐름이 월가가 AI 반도체를 넘어 비스트라(Vistra), 콘스텔레이션(Constellation) 같은 민간 발전 사업자와 송배전 장비 업체로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옮기는 이유입니다. 데이터센터 인허가가 1년만 지연돼도 수십조 원 규모의 자본 투자 회수가 늦어지고, 그게 곧 기업 밸류에이션(valuation)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얹힙니다. 여기서 밸류에이션이란 기업의 현재 가치를 미래 현금흐름 기대치를 기반으로 산정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인허가 지연이 현금흐름 전망을 훼손하면 주가에 바로 반영된다는 뜻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실리콘밸리 주민들이 AI 자체를 반대하는 건가요?
A. AI 기술 자체를 전면 거부한다기보다, 그 파급 효과가 자신의 삶을 나쁘게 만든다는 데 반발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주민 3명 중 2명이 AI 발전 속도에 불안을 느낀다고 했고, 75%는 환경 파괴를 우려했습니다. 기술 자체보다 속도와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로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Q. 한국은 AI에 대한 인식이 다른가요?
A. 퓨 리서치 센터가 2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미국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AI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반면 한국은 16%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반도체 제조 강국이라는 자부심과 기술 친화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됩니다. 다만 이 낙관론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Q. 데이터센터 반대 운동이 실제 AI 투자에 영향을 주나요?
A. 수치로 보면 분명히 영향을 줍니다. 미국에서만 올해 상반기 약 2,00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주민·지자체 반대로 막혔습니다. 인허가 지연이 1년만 길어져도 빅테크의 자본 회수 일정이 밀리고 기업 가치 평가에 부담이 생기기 때문에, 월가는 이미 전력 인프라 관련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Q. 빅테크 직원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보나요?
A. 예상보다 내부 시각도 비판적입니다. 주민의 73%가 빅테크가 도덕적 나침반을 잃었다고 답했는데, 테크 기업 직원들 중에서도 67%가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바깥의 불만이 아니라 안쪽에서도 비슷한 시각이 있다는 점은, 단순한 반기업 정서로 치부하기 어렵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결론
이번 설문조사를 보면서 제가 바뀐 생각은 이겁니다. AI 투자의 리스크를 기술 경쟁이나 규제 관점에서만 봤던 제 시각이 너무 좁았다는 것. 전력, 인허가, 지역 여론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변수들이 수백조 원짜리 자본 계획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수치로 확인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나가도 그것을 작동시킬 전력이 없고, 그것을 짓게 해줄 지역 동의가 없다면 속도는 결국 꺾입니다. AI 산업의 다음 국면은 누가 더 빠른 모델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현명하게 지역 사회와 공존하느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점검하고 있다면, 반도체와 함께 전력 인프라 섹터를 눈여겨보는 것도 하나의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