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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거래소가 오후 3시 30분에 문을 닫은 뒤에도,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달러로 24시간 거래되고 있습니다. 저는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주식 한 주도 없이 주가를 거래한다고? 도박이랑 뭐가 다른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알아볼수록, 이건 그냥 새로운 투자 상품의 등장이 아니라 가격 결정권이 어디에 있느냐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예측시장, 도박인가 금융인가
솔직히 처음엔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을 그냥 경마장 버전의 온라인 도박으로 봤습니다. 누가 당선될지, 어느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지 돈을 거는 구조가 딱 그렇게 보였거든요. 여기서 예측시장이란 어떤 사건의 결과에 예스(Yes) 또는 노(No)로 베팅하는 이진(Binary) 방식의 거래 구조를 말합니다. 폴리마켓이나 칼시(Kalshi) 같은 플랫폼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생각을 좀 바꿔보니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NBA 구단 두 곳이 실제로 칼시에서 자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베팅했다고 합니다. 진출하면 선수들에게 보너스를 줘야 하는데, 그 비용을 예측시장의 수익으로 상쇄한 거죠. 누군가에게는 스포츠 도박이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엄연한 보험인 셈입니다.
배팅, 보험, 파생금융 사이의 경계가 사실상 없다는 얘기는 법적으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우리나라는 자본시장법과 형법이 이 셋을 완전히 다른 틀로 규율하지만, 온체인 금융에서는 그 경계 자체가 무너집니다. 지방선거 직후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에 폴리마켓으로 베팅해 2억 원 넘게 번 사례가 뉴스에 나왔을 때 기사 하단에 "한국인이 하면 불법"이라는 단서가 붙었던 이유가 바로 그 간극에서 비롯됩니다.
- 폴리마켓·칼시: 이진(Binary) 베팅 방식, 정치·스포츠 이벤트 중심
- NBA 구단 사례: 동일한 거래가 베팅이자 보험으로 동시에 기능
- 한국: 자본시장법·형법·도박 규제가 분리돼 있어 법적 공백 발생
영구선물, 삼전·닉스를 24시간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 같은 온체인 거래소에서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를 거래할 수 있게 된 건 2025년 도입된 HIP-3 프로토콜 덕분입니다. 여기서 HIP-3란 누구나 변수만 설정하면 합성자산 기반 거래 상품을 블록체인 위에 개설할 수 있도록 표준화한 양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로블록스에서 초등학생이 게임을 만들어 올리듯, 개발자가 "이 상품의 기준 가격은 여기서 가져온다"고 선언하면 상품이 열립니다.
이때 거래되는 것은 실제 주식이 아닙니다. 주가의 움직임을 추종하는 합성자산선물(Synthetic Perpetual Futures), 즉 영구선물입니다. 영구선물이란 만기가 없는 파생상품으로, 전통 선물·옵션과 달리 청산 기한이 없습니다. 대신 온체인 가격이 현물 가격보다 높게 벌어지면 롱(매수) 포지션 보유자가 숏(매도) 포지션 보유자에게 펀딩 피(Funding Fee)를 지급하는 구조로 괴리를 자동 조정합니다. 덕분에 온체인 삼성전자 가격은 실제 거래소 현물 가격에 상당히 수렴해 움직입니다.
제가 직접 하이퍼리퀴드 인터페이스를 살펴봤는데, 한국 거래소가 닫힌 자정에도 호가창이 멀쩡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거래 통화는 원화가 아니라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USDC입니다. 여기서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이란 달러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1:1로 연동시킨 디지털 자산으로,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을 제거한 결제 수단입니다. 달러로 삼성전자에 투자하는 구조이니 자연스럽게 USD/KRW 환율까지 반영된 투자 포지션이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스페이스X IPO를 앞두고 이 구조가 얼마나 강력한지 드러났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하이퍼리퀴드에서 스페이스X 영구선물이 주당 165달러 안팎에 거래됐는데(출처: Bloomberg), 이는 확정 공모가 135달러보다 약 22% 높은 수준입니다. 하루 24시간 거래량은 6,900만 달러, 미결제약정은 1억 4,500만 달러에 달했습니다. 상장 전부터 온체인 시장이 가격 발견(Price Discovery)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달러패권, 온체인이 강화하는 역설
탈중앙을 외치며 등장한 시장이 결과적으로 달러의 위상을 더 키우고 있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전통 외환시장에서 달러는 거래 결제통화 기준으로 약 87%를 차지하고,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에서도 57% 수준입니다(출처: IMF COFER 데이터). 그런데 지금 얘기하는 온체인 예측시장과 영구선물 시장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비중은 사실상 100%입니다.
엘리트 기관투자자나 중앙은행은 달러 외에 금, 유로 등을 분산 보유합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접속한 일반 대중은 결국 달러를 선택합니다. 언제든 유동화할 수 있고, 전 세계 누구나 받아주는 건 달러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온체인 자산 320억 달러 규모 가운데 약 50%가 미국 국채 형태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온체인 시장이 커질수록 미국으로 자금이 흘러들어 가는 구조입니다.
미국이 이 그랜드 플랜을 의식하고 있다는 정황도 있습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합법화와 온체인 자산의 제도 편입을 추진하면서, 전 세계 유동 자금을 AI·로보틱스·생명공학 투자 재원으로 끌어모으는 전략과 연결하는 모습입니다. 메타의 저커버그가 예측시장에 진입한다는 뉴스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한국 입장에서 제가 가장 걱정스러운 지점은 이겁니다. 온체인 시장은 탈국경(국경 없는 거래), 탈중계(금융기관 없는 P2P 거래), 탈규제(기존 법 체계 밖에서 작동)라는 세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닙니다. 우리나라 증권사들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직접 들어가지 못하는 사이, 미국 투자은행이 SK 하이닉스 하락 리스크를 예측시장에서 헤지한 뒤 한국 증권사에 파생상품을 되파는 구조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나옵니다. 제 경험상 규제 논의가 무르익을 즈음엔 시장의 세팅이 끝나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도 그 패턴을 따를까 봐 솔직히 불안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하이퍼리퀴드에서 삼성전자를 거래하면 실제 주주가 되는 건가요?
A. 아닙니다. 여기서 거래되는 건 삼성전자 주가의 움직임을 추종하는 영구선물, 즉 합성자산입니다. 주식 소유권은 전혀 발생하지 않고 가격 방향에 베팅하는 구조입니다. 배당도 없고 주주총회 의결권도 없습니다.
Q. 한국인이 폴리마켓이나 하이퍼리퀴드를 쓰면 불법인가요?
A. 현행 법 해석상 논란이 있는 영역입니다. 도박 규제를 적용하면 불법으로 볼 소지가 있고, 자본시장법 적용 여부도 불명확합니다.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는 회색지대인 만큼, 섣불리 접근하기보다 제도 변화를 주시하는 쪽이 현실적입니다.
Q. 온체인 영구선물 가격이 실제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A. 영향을 미친다는 시각도 있고, 유동성 규모 차이 때문에 아직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다만 한국 거래소가 닫힌 시간에 온체인에서 형성된 가격이 다음 날 장 초반 포지션 설정에 참고된다는 얘기는 업계에서 실제로 나오고 있습니다. 가격 결정권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현실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Q. 스페이스X 상장 전에 온체인에서 공모가보다 높게 거래됐다는데, 그 가격이 신뢰할 만한가요?
A. 일부는 상장 후 가격 발견 기능을 한다고 보지만, 회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모닝스타는 스페이스X 적정 주가를 공모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63달러로 제시했습니다. 레버리지 거래 비중이 높아 가격 왜곡 가능성이 있는 만큼, 온체인 가격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결론
저도 처음엔 예측시장을 도박 근처 어딘가에 놔뒀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보니 보험이기도 하고 파생금융이기도 한, 경계 자체가 없는 구조였습니다. 참 묘한 세상입니다.
문제는 이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동안 한국 자산의 가격 결정권이 국경 밖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도 아직 결론이 없고, 한국 금융사들이 직접 뛰어들 수 있는 법적 경로도 막혀 있습니다. 미디어 산업에서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들어온 뒤 로컬 플랫폼이 종속됐던 경로와 겹쳐 보이는 건 저만의 과잉 해석일까요. 일단 이 시장을 어떤 눈으로 볼 것인지 스스로 정리해두는 것, 그게 지금 개인 투자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