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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내기 싫어서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구조대로 과세가 시행되면, 의도하지 않은 시장 왜곡이 반드시 발생합니다. 업계에서 직접 지켜보면서 이건 형평성 문제가 아니라 설계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가상자산 과세가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지금, 이 시점에서 한번 제대로 짚어보겠습니다.

금투세는 없는데 코인 과세만 생긴다면
솔직히 처음 이 구조를 들었을 때 저도 좀 황당했습니다. 주식 양도세, 즉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는 이미 폐지 수순을 밟았는데, 가상자산 과세는 예정대로 밀어붙이겠다는 거잖아요. 여기서 금투세란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상품에서 발생한 이익에 부과하는 세금을 말합니다. 이게 없어졌다는 건, 주식으로 수익이 아무리 나도 세금을 안 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내년부터 법인들의 가상자산 거래소 계좌 개설도 허용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방향이 동시에 진행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DAT 기업, 즉 디지털 에셋 트레저리(Digital Asset Treasury) 기업 문제가 터집니다. DAT 기업이란 상장사가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을 주요 자산으로 보유하면서, 투자자들이 그 회사 주식을 사는 것만으로도 간접적으로 코인에 투자한 효과를 누리게 해주는 구조입니다. 미국의 스트래티지(Strategy, 구 MicroStrategy)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출처: 미국 SEC 공시).
이 구조가 한국에 들어오면, 가상자산 익스포저(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 노출도)는 그대로 챙기면서 세금은 내지 않는 우회로가 생기는 겁니다. 코인을 직접 사면 과세, DAT 기업 주식을 사면 비과세. 투자자 입장에서 선택은 너무 명확합니다. 제가 봤을 때 이건 설계 실수가 아니라 설계 공백입니다.
- 금투세 폐지 → 주식 수익은 비과세
- 가상자산 과세 시행 → 코인 직접 투자 수익은 과세
- DAT 기업 주식 투자 → 코인 간접 노출, 세금 없음
- 비트코인 현물 ETF(한국 미도입, 미국은 이미 승인) → 향후 도입 시 동일 문제 반복
규제가 규제를 낳는 악순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가 한 말이 이 상황에 딱 맞습니다. "정부의 규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또 다른 정부 개입을 야기한다." 제가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냥 이론적인 얘기겠거니 했는데, 가상자산 정책을 지켜보면서 이게 교과서가 아니라 현실 묘사라는 걸 느꼈습니다.
과세 시행 → 투자자들이 DAT 기업으로 몰림 → 정부가 DAT 기업 규제 검토 → DAT 기업 규제 → 투자자들이 미국 스트래티지 같은 해외 종목으로 이탈 → 해외 투자 세금 이슈 발생. 이 흐름을 저는 꽤 높은 확률로 현실이 될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한국 규제 당국의 성향상 DAT 기업 자체를 아예 만들지 못하게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국내 거래소 문제도 심각합니다. 코인베이스 같은 글로벌 거래소는 매출의 절반 이상이 커스터디, 밸리데이터 운영 같은 비거래 수수료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밸리데이터(Validator)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거래를 검증하고 블록을 생성하는 역할을 맡은 노드를 의미합니다. 일종의 블록체인 인프라 운영자라고 보면 됩니다. 반면 업비트 같은 국내 거래소는 규제 때문에 거래 중개 수수료에만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과세로 거래량이 줄면 수익이 직격탄을 맞는데, 다른 수익원은 막혀 있는 상황이죠(출처: CoinMarketCap 거래소 순위).
제 경험상 업계에서 이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논의 테이블에 업계 목소리가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유예를 반복하는 동안 한 번이라도 진지한 공청회나 업계 초청 토론이 있었다면 지금 이 구도는 달라졌을 겁니다.
그러면 지금 뭘 해야 할까
저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건 상식입니다. 다만, 지금 이 구조 그대로 시행하면 과세 설계의 목적 자체가 무너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과세로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목표가 있다면, 투자자들이 과세 회피 경로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구조를 먼저 다져야 합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은 주식과 가상자산 모두 과세하기 때문에 DAT 기업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최근 코인 세율을 기존 약 50%에서 20% 수준으로 낮추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선택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모든 투자 자산에 균일하게 과세하거나, 아니면 아예 비과세로 산업을 키우거나. 지금 한국처럼 코인만 골라서 과세하는 구조는 어느 쪽도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방향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과세를 당분간 유예하고 그 기간 동안 업계 종사자들과 진짜 논의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유예는 여러 번 했지만 그 기간 동안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진 적은 없었습니다. 둘째, DAT 기업과 밸리데이터 기업, 스테이킹 서비스 등 디지털 자산을 보유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에 대한 정의부터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회사는 DAT고 어떤 회사는 아닌지 기준이 없으면 과세 형평성은 처음부터 무너집니다. 스테이킹(Staking)이란 보유한 코인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예치해 검증에 참여하고 보상을 받는 행위를 말합니다. 셋째, 금투세와의 형평성 문제를 포함해 전체 자산 과세 체계를 같이 검토해야 합니다. 코인 과세만 따로 다루는 방식으로는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2030 세대를 잡겠다고 했던 그 정책들이 어느새 40대가 된 저희 세대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조금 씁쓸한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목소리를 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상자산 과세가 시행되면 세금은 얼마나 내야 하나요?
A. 현재 설계된 구조 기준으로, 연간 250만 원의 기본공제를 초과한 가상자산 소득에 대해 22%(지방소득세 포함)의 세율이 적용됩니다. 공제 한도가 주식 양도세보다 낮게 설정돼 있어 상대적으로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Q. DAT 기업이 한국에도 생길 수 있나요?
A. 내년부터 법인의 거래소 계좌 개설이 허용될 방향으로 가고 있어, 이론적으로는 국내 DAT 기업 등장이 가능해집니다. 다만 과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 때문에 별도 규제가 생길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Q. 코인 현물 ETF는 언제 한국에 들어오나요?
A. 아직 정식 허용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는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현물 ETF가 이미 승인돼 거래 중이지만, 한국은 자본시장법상 편입 가능 자산 문제 등으로 도입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도입 시 세금 처리 방식이 또 다른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Q. 일반 투자자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A. 감정적인 반발보다는 구체적인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국회 입법 예고 의견 제출, 관련 청원 참여, 업계 단체를 통한 의견 전달 등이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세금 내기 싫다는 호소가 아니라, 시장 왜곡 가능성을 이성적으로 설명하는 목소리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Q. 코인 과세를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A.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금투세가 폐지된 선례가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폐지보다는 세율 인하, 공제 한도 상향, 거래세 전환 등 다양한 대안을 함께 논의하는 방향이 국회 통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지금 가상자산 과세 논란의 핵심은 세금을 내느냐 마느냐가 아닙니다. 이 구조 그대로 시행했을 때 시장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그 왜곡이 결국 누구한테 피해로 돌아오는지의 문제입니다. 제가 이 업계를 지켜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유예를 반복하면서도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국회 하반기 세법 개정안 논의가 남아 있습니다. 업계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 논의 테이블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가 앞으로의 방향을 가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추를 잘못 끼우기 시작하면 계속 잘못 끼워진다는 게 이미 보이는데, 지금 멈추는 게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