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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만든 바이러스 (에보, 박테리오파지, 항생제내성)

themorethebetter 2026. 8. 1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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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8월, 사이언스지에 논문 하나가 실렸습니다. AI가 바이러스 하나를 유전자 단위에서 통째로 설계했고, 그중 16개가 실제로 살아 움직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솔직히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두 번 읽었습니다. 부품 하나가 아니라 생명체 전체의 설계도를 AI가 만들었다는 건, 언어 모델이 글을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으니까요.

     

    AI가 만든 바이러스 (에보, 박테리오파지, 항생제내성)
    AI가 만든 바이러스 (에보, 박테리오파지, 항생제내성)

     

    에보(Evo)가 DNA를 읽는 방식

    이번 연구의 핵심 도구는 '에보(Evo)'라는 유전체 AI 모델입니다. 여기서 유전체 언어 모델이란, ChatGPT 같은 텍스트 모델이 단어의 다음 단어를 예측하듯, DNA의 염기 서열에서 다음에 올 염기를 예측하도록 학습된 AI를 의미합니다. DNA를 구성하는 기본 염기는 A(아데닌), C(사이토신), G(구아닌), T(티민) 네 가지인데, 이 네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열되느냐에 따라 생물학적 정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에보는 바로 이 배열의 패턴을 대규모로 학습한 AI입니다.

    아크(Arc) 연구소와 스탠퍼드 연구팀이 공동 개발해 온 에보는 이미 에보1, 에보2 버전이 있었고, 이번 연구에서는 여기에 박테리오파지 관련 유전자 15,000개를 추가로 학습시켜 파지 설계에 특화된 버전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이 구조가 텍스트 생성 AI와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이었습니다. 언어 모델이 문장의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것처럼, 에보는 유전 서열의 다음 염기를 예측하며 생물학적으로 작동 가능한 유전체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는 스탠퍼드 대학교 생명공학 박사 과정의 세미 킹(Sami King)이고, 공동저자는 같은 대학 화학공학과 브라이언 교수팀입니다. 논문은 8월 6일 자로 사이언스지에 게재됐는데, 사이언스는 연간 12,000편 넘는 투고 논문 중 8%만 실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입니다(출처: Science). 같은 호에 논평까지 함께 실렸다는 사실은, 학계가 이 연구를 단순한 흥미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요약: 에보는 DNA 염기 서열을 언어처럼 학습하는 유전체 AI로, 이번 연구에서 파지 설계 특화 버전이 사이언스지에 실렸습니다.

     

    AI가 설계한 박테리오파지 

    이번 실험에서 사용된 바이러스는 파이X174(φX174)입니다.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 이 바이러스는 5,386개의 염기로 구성된 작은 파지로, 대장균의 C균주를 숙주로 삼습니다. 파이X174가 선택된 데는 역사적 이유도 있습니다. 1977년 인류가 최초로 전체 유전자 서열을 해독한 생물이 바로 이 파이X174였고, 2003년에는 전체 유전체를 화학적으로 합성한 첫 사례도 이 바이러스였습니다. 그러니까 1977년 해독, 2003년 화학 합성, 2025년 AI 설계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이 같은 바이러스에서 반복된 셈입니다. 연구팀이 의도적으로 파이X174를 선택한 이유가 충분합니다.

    에보가 처음 생성한 후보 서열은 수십만 개였고, 그 중 실제로 합성해서 실험할 수 있었던 것은 285개였습니다. 그리고 285개 중 실제로 대장균을 감염시키고 증식에 성공한 것은 16개였습니다. 성공률로 따지면 약 6%인데, 이 숫자를 낮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제 시각은 다릅니다. 이전까지는 이게 0%였다는 게 핵심입니다. AI가 부품 하나가 아닌 전체 유전체를 설계하고, 그것이 실제 생물학에서 작동한다는 걸 증명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대목이 있었습니다. 작동한 16개를 자연계의 기존 바이러스와 비교했더니, 가장 유사한 바이러스와도 최대 392개 염기가 달랐고, 가장 덜 달라진 경우도 7%가 차이 났습니다. 인간 유전자로 치면 침팬지와 인간의 차이가 약 1~2%인 점을 감안하면, 7%는 거의 새로운 종에 가까운 차이입니다. AI가 기존 서열을 살짝 바꾼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새로운 설계를 만들어냈다고 봐야 합니다.

    • 파이X174: 5,386개 염기로 구성된 소형 박테리오파지, 사람에게 무해
    • 에보가 생성한 후보 수십만 개 → 합성 실험 285개 → 실제 작동 16개(약 6%)
    • 작동한 16개는 자연 바이러스와 최대 392개 염기가 달라 사실상 신규 설계
    • 이종 단백질 조합 시 AI가 스스로 구조 틈새를 조정하며 맞물리는 패턴 확인
    요약: AI가 설계한 285개 후보 중 16개가 실제로 살아 움직였고, 이는 자연에 없던 새로운 유전체 설계가 생물학적으로 작동함을 처음 증명한 사례입니다.

     

    항생제 내성과 이 연구의 연결성 

    박테리오파지란 사람이 아닌 세균만을 전문적으로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입니다. 파지가 세균에 달라붙어 자신의 유전 물질을 세균 안으로 집어넣으면, 세균 내부에서 파지가 대량 증식하고 결국 세균이 터져서 죽습니다. 세균 입장에서는 천적인 셈입니다. 이 파지가 요즘 의학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항생제 내성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항생제 내성(Antimicrobial Resistance, AMR)이란, 세균이 항생제를 무력화하는 방어 기전을 획득해 기존 치료제가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2024년 국제 공동 연구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항생제 내성 세균에 의해 직접 사망한 사람이 전 세계에서 약 114만 명이었고, 간접적 영향까지 포함하면 약 471만 건의 사망과 연관됩니다(출처: The Lancet).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주요 공중보건위협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2025년부터 2050년 사이 항생제 내성으로 직접 사망하는 인원이 누적 3,900만 명을 넘을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옵니다.

    문제는 제약 회사들이 새 항생제 개발에 소극적이라는 점입니다. 고혈압 약이나 당뇨 약은 평생 먹는 약이라 매출이 꾸준히 쌓이지만, 항생제는 며칠 혹은 몇 주만 복용하면 치료가 끝납니다. 게다가 새로 개발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기지 않도록 사용을 제한해야 하니, 판매량이 늘어나는 게 오히려 의학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은 아이러니한 구조입니다. 제가 이 구조를 처음 파악했을 때 솔직히 허탈했습니다. 필요하다는 걸 모두 알면서도 경제 논리 때문에 개발이 멈추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요약: 항생제 내성으로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하지만 경제 논리로 신규 항생제 개발이 정체된 상황에서, 세균만 공격하는 박테리오파지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AI 파지 설계가 바꿀 수 있는 것들

    파지 치료가 지금까지 임상에서 널리 쓰이지 못한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파지 하나가 공격할 수 있는 세균의 종류가 매우 좁기 때문입니다. 환자에게 문제를 일으킨 세균에 맞는 파지를 찾아야 하는데, 그 파지를 어디서 찾느냐 하면 강이나 호수, 토양 같은 자연환경에서 채취해 하나하나 실험해야 했습니다. 실제로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이 국내 하천과 호수를 6개월간 조사해 A3676P라는 파지를 발견했고, 이것이 항생제 내성 아시네토박터균 8종을 죽이는 효과가 있다고 확인됐습니다. 이 한 건의 발견에 6개월이 걸린 겁니다.

    AI 설계가 이 병목을 바꿀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강에서 6개월 걸려 파지 하나를 찾는 대신, AI가 수십만 개의 후보를 생성하고 그 중 가능성이 높은 것만 실험실에서 합성해 검증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면 속도와 범위가 달라집니다. 파지 칵테일(phage cocktail)이라는 접근법, 즉 여러 파지를 섞어 다양한 세균 변종에 대응하는 방식과 AI 설계를 결합하면 시너지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연구를 보면서 알파폴드(AlphaFold)가 떠올랐습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는 단백질 3차 구조 예측으로 2024년 노벨 화학상을 가져갔고, 그 팀은 이후 더 심화된 연구로 분산됐습니다. 일부에서는 구글·알파벳이 결국 신약 회사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AI가 바이오제약 시장의 게임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느낌이 든 건 저만이 아닐 겁니다. 코로나 시기에 국내에서도 AI를 활용한 백신 개발이 꽤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경험이 있었던 만큼, 이 흐름에서 우리가 어떤 포지션을 가져가야 할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요약: AI 파지 설계는 자연 탐색에 수개월이 걸리던 기존 방식을 대체해,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속도 가속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AI가 만든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위험하지 않나요?

    A.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파이X174는 대장균의 특정 균주만을 감염시키는 박테리오파지로, 사람이나 동물, 식물에는 감염되지 않습니다. 연구팀은 안전을 위해 인체나 동식물에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처음부터 학습 데이터에서 제외했고, 실험도 실험실용 대장균에 한정했습니다.

     

    Q. 에보(Evo)는 어디서 만든 AI인가요?

    A. 에보는 아크(Arc) 연구소와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팀이 공동 개발한 유전체 언어 모델입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기존 에보 모델에 박테리오파지 관련 유전자 15,000개를 추가로 학습시켜 파지 설계에 최적화된 버전을 사용했습니다.

     

    Q. 파지 치료가 항생제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나요?

    A. 아직 그 단계는 아닙니다. 파지는 공격 가능한 세균의 범위가 좁아 환자마다 맞춤 설계가 필요하고, AI가 설계한 후보도 합성과 효과·안전성 검증 과정을 거쳐야 실제 치료제가 됩니다. 다만 AI 설계가 이 개발 과정의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 있는 보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Q. 성공률 6%가 너무 낮은 것 아닌가요?

    A. 절댓값으로 보면 낮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전까지는 이 방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0에서 6%로 간 것이 핵심이고, AI 모델과 합성 기술이 발전하면 이 수치가 빠르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신약 개발에서 임상 1상 성공률도 통상 10% 안팎임을 감안하면 의미 없는 숫자가 아닙니다.

     

    결론

    AI가 바이러스의 유전체 전체를 설계하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했다는 건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닙니다. 자동차 부품 하나를 잘 만드는 것과 자동차 한 대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것이 다르듯, 이번 연구는 AI가 생명의 설계도를 전체 시스템으로 다룰 수 있다는 걸 처음 증명했습니다. 6%라는 성공률보다 '0이 아니다'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이유입니다.

    항생제 내성으로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경제 논리로 인해 신규 항생제 개발이 멈춰 있는 지금, AI가 설계한 박테리오파지는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현실적인 방향 중 하나로 보입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후보를 합성하고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는 과정은 여전히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방법론 자체가 새로 생겼다는 건, 이제부터 속도의 문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참고: https://youtu.be/zm3IsTpWWGU?si=bMEjjtuTN_3zBOB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