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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블록체인 장부를 읽는다 (가명성, AI 에이전트, 사기 방어)

themorethebetter 2026. 8. 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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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해외에서 평소에 잘 안 쓰던 카드로 결제를 시도했다가 카드사로부터 바로 확인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제 소비 패턴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요. 그 순간 들었던 생각이 "이게 AI가 나를 보고 있는 건가?"였습니다. 알고 보니 정확히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 원리가 지금 블록체인 세계에도 본격적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걸, 최근 여러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실감했습니다.

     

    AI가 블록체인 장부를 읽는다 (가명성, AI 에이전트, 사기 방어)
    AI가 블록체인 장부를 읽는다 (가명성, AI 에이전트, 사기 방어)

     

    블록체인의 가명성, AI 에이전트 

    블록체인은 익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직접 이 것을 살펴보니 정확히는 가명성(pseudonymity)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가명성이란 이름표는 없지만 행적은 전부 남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현금은 진짜 익명입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죠. 반면 블록체인 지갑 주소는 의미 없는 문자열처럼 보이지만, 그 주소가 언제 얼마를 누구에게 보냈는지는 전 세계 누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조회할 수 있습니다. 필명으로 글을 쓰는 작가와 똑같습니다. 본명은 모르지만 그 필명이 어떤 주제로 몇 편을 썼는지는 다 보이는 것처럼요.

    그런데 문제는 공개돼 있다는 것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매일 수억 건의 온체인(on-chain) 트랜잭션이 수십 개 네트워크에서 발생합니다. 온체인 트랜잭션이란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 실제로 기록되고 검증되는 거래를 뜻합니다. 하나의 주체가 지갑 주소를 수백 개로 나눠 쓰기도 하고, 자금이 여러 네트워크를 넘나들기도 합니다. 기록은 분명히 남아 있는데, 그게 뭔지 사람 눈으로는 읽어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도서관에 책이 천만 권 있는데 제목도 저자도 분류도 없이 번호만 붙어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투명성은 있지만 가독성은 없었던 거죠.

    이 가독성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AI 에이전트가 등장했습니다. 블록체인 분석 업체 1위인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는 2025년 3월 뉴욕 연례 컨퍼런스에서 '블록체인 인텔리전스 에이전트'를 공개했습니다. 창사 이래 가장 큰 플랫폼 전환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10년간 쌓아온 수십억 건의 거래 데이터와 1000만 건 이상의 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훈련한 AI가 조직 내 누구나 전문 분석가 수준의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서비스입니다. 경쟁사인 TRM Labs도 일상 언어로 질문하면 복잡한 온체인 흐름을 추적해 주는 AI 수사 보조원을 도입했습니다(출처: Chainalysis).

    AI가 장부를 읽는 방식은 크게 네 단계입니다.

    • 여러 네트워크에 흩어진 트랜잭션 데이터를 한자리에 수집
    • 거래 시간대, 금액 패턴, 연결 관계를 분석해 수백 개 주소를 하나의 주체로 군집화(clustering)
    • 묶인 주체의 행동이 정상 흐름인지 이상 흐름인지 패턴 판정
    • 위험 신호를 정리해 사람에게 인계, 최종 판단은 인간이 담당

    여기서 군집화란 쉽게 말해 필명을 여러 개 쓰는 작가의 글을 전부 읽어봤더니 문체와 패턴이 같아 "이 네 개의 필명은 동일인이다"라고 판별하는 것과 같습니다. AI는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같은 주체임을 밝혀내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 대규모 조직의 인적 네트워크 분석을 했을 때와 구조가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그때도 설문 데이터로 사람 간 링크를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분석(SNA, Social Network Analysis) 기법으로 그룹을 나눴는데, 데이터만 보면 "이 둘은 연결될 이유가 없는데 왜 연결됐지?"라는 상황이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AI가 패턴만 보고 섣불리 결론을 내리면 명예를 해칠 수 있었습니다. 최종 해석은 언제나 사람이 맡았고, 지금 블록체인 AI 에이전트도 그 원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요약: 블록체인은 투명하지만 가독성이 없었고, AI 에이전트는 그 가독성의 공백을 채우되 최종 판단은 반드시 사람에게 인계하는 구조로 설계되고 있습니다.

     

    AI 사기 방어, 어디까지 왔나

    블록체인이 AI에게 갖는 의미는 단순히 범죄 추적 도구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반 금융 데이터는 해당 은행 서버에 직접 접근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완벽하게 오픈되어 있고 검증된 초대형 금융 데이터셋입니다. AI 입장에서 이보다 학습하기 좋은 조건은 없습니다. 딜로이트 리포트에서도 "AI가 실시간으로 이상 징후를 잡아낼 때 블록체인의 데이터 무결성이 AI 판단의 신뢰를 뒷받침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AI가 판단하고 블록체인이 증명하는 구조가 함께 돌아가는 것입니다(출처: Deloitte).

    실제 성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체이널리시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서 비트코인 6만 1,000개를 회수한 역대급 환수 사례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여러 지갑을 거쳐 이동하더라도 경로가 장부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AI가 그 방대한 경로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발행사가 특정 자금을 동결할 수 있어서 현금과 달리 이미 나간 돈도 멈출 수 있다는 점도 디지털 자산만의 집행 이점으로 꼽힙니다.

    전통 금융에서도 같은 방향의 변화가 확인됩니다. 구글 클라우드의 자금세탁 방지 AI를 도입한 HSBC는 의심 활동 탐지가 기존 대비 2~4배 증가하면서 동시에 오탐률(false positive rate)이 60% 이상 줄었다고 밝혔습니다. 오탐률이란 실제로는 정상인 거래를 이상 거래로 잘못 분류하는 비율입니다. 더 많이 잡으면서 애먼 사람은 덜 걸리는 결과가 나온 것인데, 이게 가능한 이유는 분석 방식이 규칙 기반에서 맥락 기반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1,000만 원 이상이면 다 본다"가 아니라 "이 계좌가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갑자기 했다"는 판단 방식으로의 전환입니다.

    하지만 AI가 만능은 아닙니다.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즉 AI가 사실과 다른 내용을 자신 있게 틀리게 출력하는 현상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제가 CES 일정을 어떤 AI에게 물어봤을 때 날짜를 하루 더 붙여서 알려줬는데, 지적하기 전까지 끝까지 당당하게 틀린 일정을 고수했습니다. AI를 매일 쓰는 입장에서도 이런 오류에 속을 수 있다는 걸 체감한 경험이었습니다.

    공격하는 쪽도 AI를 씁니다. 이건 냉정하게 봐야 하는 부분입니다. 체이널리시스 보고서에 따르면 사칭형 사기가 1,400% 증가했고, AI를 활용한 사기는 기존 방식보다 수익성이 4.5배 이상 높았습니다. 예전에는 사기꾼 한 명이 상대할 수 있는 사람 수에 물리적 한계가 있었지만, AI는 계정 수십 개를 동시에 운영하며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 사기는 사기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고객센터 안내, 보안 점검 공지처럼 생겼습니다. 제가 보이스피싱 예방 강의를 전국 농협을 돌며 했을 때 이미 그 수준에서 "저도 속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정교해졌습니다.

    방어 측면에서 개인이 챙겨야 할 것들은 사실 단순합니다. 내용의 설득력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AI가 쓴 글은 사람보다 매끄럽고 논리적입니다. 대신 상황의 구조로 판단해야 합니다. 연락이 온 경로가 공식 채널인지 확인하고, 개인 키나 복구 문구는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절대 공유하지 않아야 합니다. 정상적인 서비스는 그것을 물어볼 이유가 없습니다. 시간을 압박하는 제안은 무조건 멈추고 확인하는 것이 맞습니다. 레저(Ledger)가 AI 에이전트용 오픈소스 도구를 공개하면서 "AI는 분석까지만, 서명 키는 AI 환경 밖에, 최종 승인은 사람이 버튼을 눌러야만"이라는 원칙을 굳힌 것처럼, 결국 열쇠는 AI에게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이 가장 안전합니다.

    요약: AI 감시 기술은 규칙 기반에서 맥락 기반으로 진화해 실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공격 측도 AI를 쓰는 만큼 내용의 설득력이 아닌 경로와 구조로 판단하는 습관이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블록체인은 익명이라서 범죄 추적이 안 된다는 말이 맞나요?

    A. 정확히는 익명이 아니라 가명성에 가깝다고 보는 시각이 설득력 있습니다. 지갑 주소가 누구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주소의 모든 거래 내역은 공개돼 있고 삭제도 불가능합니다. AI가 패턴을 분석하면 추적이 충분히 가능하고, 실제로 영국에서 비트코인 6만 1,000개가 회수된 사례가 이를 증명합니다.

     

    Q. AI가 블록체인을 분석할 때 오판할 가능성은 없나요?

    A. 있습니다. 이 점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AI는 몇 다리 건너 우연히 연결된 주소를 위험군으로 잘못 분류할 수 있고, 생성형 AI 특유의 할루시네이션 문제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종 판단을 AI에게 맡기지 않고 사람에게 인계하는 구조가 현재 업계 표준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Q. AI 사기를 개인이 실제로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내용이 자연스럽고 논리적인지로 판단하는 건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AI가 쓴 글이 사람보다 더 매끄러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대신 연락이 온 경로가 공식 앱이나 홈페이지인지 확인하고, 시간을 압박하거나 비공개를 요구하는 제안은 무조건 멈추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방어 방법입니다.

     

    Q. 스테이블코인은 일반 암호화폐와 보안 측면에서 뭐가 다른가요?

    A.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가 특정 주소의 자금을 동결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현금과의 결정적인 차이인데, 현금은 일단 나가면 막을 수 없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이상 거래가 감지됐을 때 AI가 신호를 보내고 발행사가 자금을 멈출 수 있습니다. 체이널리시스 보고서에서도 이를 디지털 자산 집행의 고유한 이점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결론

    블록체인은 투명성을 줬고, AI는 그걸 읽는 눈을 줬습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추적이 안 돼서 위험하다"던 통념이 뒤집히고 있습니다. 흔적이 남고, AI가 그걸 읽어내고, 필요하면 자금을 멈출 수도 있으니 오히려 투명성이 강점이 된 시대입니다.

    다만 같은 기술이 공격 쪽에도 쓰인다는 점은 냉정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AI 사기는 이미 산업화 수준에 들어섰고, 그 설득력과 정교함은 전문가도 속을 수 있는 수준에 와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하나입니다. 열쇠는 누구에게도, 심지어 AI에게도 주지 않는다. 최종 서명은 반드시 사람이 한다. 이 원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참고: https://youtu.be/C4QaB7MKDcM?si=lY7y4O1rDNDOl8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