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저는 한동안 AI 반도체 랠리가 코인 시장에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동성을 싹 빨아들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들어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AI 버블이 살아 있어야 코인도 기회가 생긴다는 걸 닷컴버블 사례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체감했거든요. 코스피가 기술적 약세장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곳에서도 나오는 지금, 이게 코인 투자자에게 위기인지 기회인지 한번 따져봤습니다.
닷컴버블이 보여준 것: 악재 속에서도 버블은 끝까지 간다
코스피가 6월 고점 대비 20% 넘게 빠지면서 기술적 약세장(Technical Bear Market) 진입 판정을 받았습니다. 기술적 약세장이란 고점 대비 낙폭이 20%를 초과할 때 월가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으로, 법적 기준은 아니지만 1970년대 이후 증권가에서 단순 조정과 구분하는 기준선으로 굳어진 개념입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개별 종목은 지수보다 낙폭이 더 컸겠죠.
코인 투자하시는 분들 중에는 "겨우 20% 빠진 거 가지고 뭘"이라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수치의 문제가 아닙니다. 코인에서 손실을 본 뒤 반도체로 넘어갔다가 또 깎인 분들도 많고, 쓰지 말아야 할 돈으로 들어오셨다가 지금 이 변동성을 버티고 있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수치는 같아도 체감 충격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흔들림이 AI 버블의 종말을 의미하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역사가 근거입니다. 1995년부터 2000년 3월까지 이어진 닷컴버블 상승기 동안 나스닥 종합지수는 600% 가까이 올랐는데, 그 기간에 악재가 없었던 게 아닙니다.
닷컴버블 기간 중 발생한 주요 충격들
제가 직접 당시 자료를 찾아보면서 새삼 놀랐는데, 지금 우리가 겪는 것과 비교하면 그때 악재들은 수준이 달랐습니다.
- 1997년 말 아시아 외환위기(IMF 사태): 태국·인도네시아·한국 등 아시아 전역이 흔들리며 나스닥이 약 20% 급락
- 1998년 러시아 디폴트: 러시아가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며 추가 급락 발생, 나스닥 지수 -30% 수준
- LTCM 파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명이 설립한 세계 최대 헤지펀드가 과도한 레버리지로 붕괴. 레버리지(Leverage)란 자기 자본 이상의 돈을 빌려 투자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만 손실도 그만큼 확대됩니다. 이 사태로 나스닥은 IMF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 1999년 6~11월 연준의 세 차례 연속 금리 인상: 과열을 경고하는 강한 신호였지만, 시장은 2000년 3월까지 상승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마존은 이 시기에 -54%를 맞고도 이후 열 배까지 올랐고, 시스코는 -30%를 두 번 맞은 뒤 각각 그 이상의 반등을 보였습니다. 조정이 없었던 게 아니라, 조정을 딛고 올라갔던 겁니다.
저는 이게 AI 버블과 닷컴버블을 비교하는 이유라고 봅니다. 인터넷처럼 AI도 세상에 아예 없던 기술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전기차는 기존에 있던 것들을 연결한 혁신이라면, 인터넷과 AI는 새로운 층위 자체를 만들어낸 발명입니다. 그러니 버블의 지속 시간도, 그 규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22년 말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단순 비교로는 27년 하반기 정도까지는 명맥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고, 저도 그 방향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순환매와 우량자산: 코인 투자자가 지금 집중해야 할 이유
그러면 지금 코인 투자자는 어떤 시각으로 이 상황을 봐야 할까요? 한쪽에선 "AI 버블이 꺼지면 코인도 기회"라는 말이 나오는데, 저는 이 시각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AI 버블이 무너지면 전 세계 자산 시장 전체가 흔들립니다. 코인만 오르는 그림은 현실적으로 나오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제 경험상 더 현실적인 그림은 이쪽입니다. AI 반도체가 폭등하지는 않더라도 횡보하거나 완만하게 유지되는 동안, 순환매(Rotation)가 일어나면서 코인 쪽으로 유동성이 흘러드는 시나리오입니다. 순환매란 시장 자금이 주도 섹터에서 소외 섹터로 옮겨가는 현상으로, 주식 시장에서는 반도체 → 금융주 → 소비주 → 산업재 같은 식으로 이동이 일어납니다. 닷컴버블 막바지에도 인터넷주가 정점을 치기 직전, 월마트 같은 전통 유통주나 GE 같은 산업재가 5년 만에 여섯 배씩 오르는 광기가 펼쳐졌습니다. 닷컴과 무관한 자산들이었는데도요.
저는 이 전통주의 전철을 비트코인이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실제로 포트폴리오를 그쪽으로 꾸준히 옮기고 있습니다. AI 관련 비중을 먼저 줄였고, 최근 들어서는 우량주 비중도 조금씩 낮춰가며 코인을 모으고 있습니다. 물론 이 판단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영원히 하락하는 우량 자산은 없다"는 전제 위에서, 믿음의 자산을 꾸준히 쌓아가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월가는 왜 버블을 더 키우려 할까
모건스탠리, JP모건, 골드만삭스 같은 곳들이 최근 들어 "반도체에서 소비주·금융주로 갈아타라"는 메시지를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출처: Morgan Stanley). 이게 투자자들을 위한 친절한 조언이냐고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들은 버블을 끝낼 의사가 없습니다. 주도주를 바꿔가며 자금을 계속 시장 안에 붙잡아 두는 전략입니다. 한쪽에서 차익을 실현하면서 다른 쪽에서 새 수요를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정책 변수도 있습니다. 미국 주식 투자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 58%에 달합니다(출처: 연방준비제도(Fed)). 미국인 열 명 중 여섯 명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인데, 이 상황에서 선거를 앞둔 정부가 증시 급락을 방관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적완화(QE), 즉 중앙은행이 시장에서 자산을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이든, 금리 인하든 어떤 형태로든 개입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현실적입니다.
그렇다고 이게 코인 투자자에게 마냥 좋은 소식이냐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AI 버블이 갑자기 붕괴해서 모든 위험자산이 동반 급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금 당장 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입니다. 그 사이에 비트코인만의 트리거, 예를 들면 제도권 편입 관련 정책 변화나 기관 자금 유입 계기가 만들어진다면 순환매의 마지막 수혜자가 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코스피가 기술적 약세장이면 코인도 같이 떨어지나요?
A. 반드시 연동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코스피 급락이 외국인 자금 이탈, 글로벌 위험회피 심리와 맞물릴 경우 코인 시장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반도체 주가 흔들리는 구간에 코인이 상대적으로 덜 빠지거나 반등하는 경우도 역사적으로 있었습니다. 어느 방향이 맞다고 단정하기보다는, 본인 포트폴리오의 리스크 허용 범위를 먼저 점검하는 게 중요합니다.
Q. 닷컴버블 때 전통주가 올랐던 것처럼 비트코인도 오를 수 있다는 근거가 있나요?
A. 직접적인 근거라기보다는 구조적 유사성에 가깝습니다. 닷컴버블 막바지에 인터넷과 무관한 월마트나 GE 같은 전통주까지 5~6년 만에 여섯 배씩 오른 것은, 버블이 정점에 가까워질수록 시중 유동성이 모든 자산으로 번지는 현상 때문이었습니다. 비트코인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완전히 다른 자산군이라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가능성의 하나로 열어두고 있습니다.
Q. 지금 코인을 사도 되는 타이밍인가요?
A. 타이밍보다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단기 급등을 노린 진입이라면 지금이 좋은 타이밍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AI 버블이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있고, 순환매 국면에서 코인이 수혜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일시에 올인하기보다 월급처럼 꾸준히 분할 매수하는 전략이 변동성 리스크를 줄이는 데 유리합니다.
Q. 순환매가 코인까지 오려면 어떤 신호를 봐야 하나요?
A. 몇 가지를 눈여겨볼 수 있습니다. 코인 거래 대금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 기관의 비트코인 ETF 자금 유입 증가, 미국의 가상자산 관련 규제 명확화 뉴스, 그리고 AI 반도체 관련주의 거래 대금이 줄면서 다른 섹터로 이동하는 흐름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 순환매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단일 지표 하나로 판단하기보다 여러 신호를 함께 보는 게 낫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저는 지금이 포기할 때가 아니라 집중할 때라고 봅니다. AI 버블이 살아 있는 동안은 전 세계 위험자산 선호 심리도 유지됩니다. 그 안에서 순환매가 일어날 때 코인이 마지막 수혜자가 될 수 있고, 닷컴버블의 역사는 그 가능성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가장 후회되는 선택은 시장이 어렵다고 자산을 내던지고 나왔다가, 반등 구간을 통째로 놓친 경우였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내가 믿는 자산을 흔들림 없이 꾸준히 모아가는 것, 그리고 단기간에 필요한 자금은 절대 넣지 않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만 지켜도 이 시장에서 버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