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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법인, 중국 국적 창업자, 미국 기업의 인수 — 이 조합이 왜 문제가 되는지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AI 에이전트 스타트업 마누스(Manus)가 메타에 약 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조 원에 팔리려다 중국 정부의 출국 금지 명령 한 방에 딜이 멈춰버린 사건입니다. 본사가 어디 있든, 국적이 중국이면 국가가 그 뇌를 잡아둘 수 있다는 논리가 2026년 글로벌 AI 시장의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마누스 사태, 싱가포르 법인도 소용없었다
스타트업 창업을 공부하면서 "글로벌 투자를 받으려면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워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규제가 덜하고, 중립적이고, 어느 나라 자본이든 열려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마누스 팀도 그 공식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중국인 엔지니어 3명이 창업했지만, 본사는 싱가포르에 뒀고, 자율형 AI 에이전트라는 기술력으로 실리콘밸리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율형 AI 에이전트(Autonomous AI Agent)란, 사용자가 명령을 내리면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코딩·리서치·실행까지 연쇄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목표를 향해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크 저커버그가 20억 달러를 제시할 만큼 기술 가치를 인정받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딜이 성사되기 직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인수를 강제 중단시켰습니다.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습니다. 최고경영자 샤오훙과 최고과학자 지이차오에게 출국 금지 명령을 내렸고, 두 사람은 중국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됐습니다. 서류상 싱가포르 기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창업자의 여권 색깔이 중국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게 가능했습니다. 제가 이 흐름을 추적해 보니, 이건 단순한 기업 규제가 아니라 역외 관할권(Extraterritorial Jurisdiction)을 사람에게 적용한 사례였습니다.
- 본사: 싱가포르 등록법인
- 창업자 국적: 중국
- 인수 시도: 미국 메타, 약 20억 달러
- 중단 주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 조치 내용: 창업자 2인 출국 금지 명령
미국도 움직였다 — NSTM4와 모델 증류 전쟁
중국만 움직인 게 아닙니다. 미국도 같은 시기에 상당히 강도 높은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백악관이 2025년 4월에 발표한 NSTM4, 즉 국가안보과학기술메모 4호(National Security and Technology Memorandum 4)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NSTM4란 미국 행정부가 AI 기술을 국가 안보 자산으로 공식 지정하고, 외국 세력의 접근을 체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문서입니다(출처: 미국 백악관).
이 문서에서 미국 정부가 가장 강하게 문제 삼은 것이 모델 증류(Model Distillation)입니다. 모델 증류란, 성능이 뛰어난 대형 AI 모델의 출력값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더 작고 저렴한 모델을 학습시키는 기법입니다. 쉽게 말해 전교 1등 옆에 앉아 모든 풀이 과정을 받아 적은 뒤, 그 노트로 자기 시험을 준비하는 방식입니다. 합법적 API 접근을 이용한다는 점이 핵심이라, 기존 해킹과 달리 법적으로 막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미국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측은 수만 개의 프록시 계정을 운용해 미국 프론티어 AI 모델의 응답을 대규모로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자국 AI 모델을 학습시켰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낀 건, 이건 기술 절취라기보다 시스템 설계의 허점을 파고든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투자비를 들여 만든 AI가 API 창구 하나로 합법적으로 복제된다면, 반도체 수출 통제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출처: 조지타운대학교 안보기술센터(CSET)).
디지털 장막 — 기술이 세상을 둘로 나누다
일반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하나로 연결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생각에 이건 좀 다릅니다. 마누스 사태 이후 중국 당국이 바이트댄스(ByteDance), 문샷 AI(Moonshot AI) 같은 자국 핵심 테크 기업들에 내린 가이드라인을 보면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미국 자본 유치 금지, 지분 양도 전 정부 사전 승인 의무화입니다. 이건 방어가 아니라 진영 내 울타리를 높이는 조치입니다.
이른바 디지털 장막(Digital Iron Curtain)이 형성되고 있다는 표현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냉전 시대의 철의 장막이 지리적 경계를 나눴다면, 지금 만들어지는 장막은 자본·데이터·인적 네트워크를 기준으로 선을 긋습니다. 미국 투자를 받은 순간 중국 시장과 인재풀 접근이 차단되고, 반대로 중국 자본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미국 기술 생태계에서 배제될 위험이 생깁니다.
여기서 역외 관할권(Extraterritorial Jurisdiction) 개념이 다시 등장합니다. 역외 관할권이란 자국 법률을 국경 밖의 인물이나 행위에도 적용하려는 권한을 말합니다. 중국은 이번 마누스 사태에서 이를 창업자의 생물학적 실체, 즉 여권과 국적을 통해 행사했습니다. 서버 IP는 VPN으로 우회할 수 있지만, 창업자의 여권은 우회가 불가능합니다. 국가가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만든 사람 자체를 통제 수단으로 삼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 기업의 전략, 줄타기가 끝났다
제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가까이서 지켜봐 온 입장에서 이 상황을 보면, 솔직히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분법적 균형을 어느 정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AI 첨단 기술이 그 균형의 중심에 들어오면서부터, 그 줄타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졌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딜레마는 인재 채용에서 나타납니다. 글로벌 서비스를 개발하겠다고 능력 있는 중국계 엔지니어를 팀에 합류시키면, 그 엔지니어의 여권이 잠재적 리스크 요인이 됩니다. 미국 투자자가 주주명부를 보는 순간, 중국 국적 보유자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 결정이 뒤집힐 수 있습니다. 제가 투자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우려는 이미 현실적인 체크리스트 항목이 됐습니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VC 자본을 유치해 규모를 키우면 중국 시장 진출이 사실상 막힙니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을 잃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분법적 환경에서 '중간 전략'이 통하는 기간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 기업들이 해야 할 것은 어느 진영에서 먼저 기술 기반을 쌓을지 판단하는 일입니다. 불편하더라도 선택을 미루는 것이 가장 비싼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누스(Manus)는 결국 메타에 팔렸나요?
A.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개입과 창업자 출국 금지 명령으로 인해 인수 딜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일반적으로 싱가포르 법인이면 중국 규제를 피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번 사례에서는 창업자 국적이 더 강력한 변수로 작용했습니다.
Q. 모델 증류(Model Distillation)가 불법인가요?
A. 모델 증류 자체는 AI 연구에서 널리 쓰이는 합법적 기법입니다. 문제는 공개 API를 통해 대규모로 출력값을 수집해 경쟁 모델 학습에 활용할 때, 이용약관 위반이나 지식재산권 침해 여지가 생긴다는 점입니다. 미국 NSTM4는 이 행위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Q. 역외 관할권이 실제로 다른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나요?
A. 역외 관할권은 미국도 오랫동안 행사해 온 개념입니다. 달러 결제 시스템이나 FCPA(해외부패방지법) 등을 통해 외국 기업·개인에게 미국 법을 적용한 사례가 많습니다. 중국이 이번에 AI 기술 인재에게 이를 적용한 것은 그 범위를 물리적 신체 통제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국면입니다.
Q. 한국 기업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대응은 무엇인가요?
A. 당장은 인력 구성과 자본 출처를 미리 점검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미국 투자를 목표로 한다면 주주 구조와 핵심 인력의 국적 리스크를 사전에 검토해야 합니다. 두 시장 모두를 염두에 둔다면, 법인 구조와 기술 스택을 어느 쪽에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분리하는 방안을 법무·IR 전문가와 함께 검토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
기술이 세상을 하나로 이어줄 거라고 믿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 흐름을 추적해 본 결론은, 그 믿음은 이미 제도적으로 해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누스 사태는 단순한 M&A 무산이 아니라, 국가가 인간의 신체적 이동 자유를 기술 패권의 수단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디지털 장막은 서버나 칩이 아니라 여권과 국적을 경계선으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과 창업자들이 이 흐름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한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괜찮겠지"라는 판단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어느 쪽 생태계에서 뿌리를 내릴지, 지금부터 염두에 두고 설계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인 선택지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