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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를 보다가 잠깐 멈췄습니다. JTBC가 법정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도 한때 JTBC를 꽤 즐겨 봤던 시청자였기에 처음엔 그냥 믿기지 않았습니다. 좋은 콘텐츠도 많았고, 브랜드 이미지도 탄탄했던 채널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속사정을 들여다보니, 이것은 만성 적자 등의 문제뿐 아니라,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한 대기업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JTBC 파산 신청 (플랫폼 권력, 광고 시장, AI 알고리즘)
    JTBC 파산 신청 (플랫폼 권력, 광고 시장, AI 알고리즘)


    파산 신청, 겉으로 보이는 숫자 너머

    표면적으로 보면 이번 사태는 단순합니다. JTBC가 단기 부채 206억 원을 막지 못해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고, 모회사인 중앙그룹 역시 220억 원 규모의 유동성 문제로 같은 절차를 밟게 됐습니다. 여기서 법정 회생 절차란, 기업이 채권자들과 자체적으로 협의가 안 될 때 법원의 힘을 빌려 만기 연장이나 채무 조정을 받는 과정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 힘으로는 못 갚겠으니 법적으로 좀 정리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숫자보다 훨씬 더 불편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JTBC는 콘텐츠 IP(지식재산권)가 탄탄한 회사였습니다. IP란 드라마, 예능, 영화 등 콘텐츠에 붙는 저작권과 사용권을 말하는데, 미디어 기업에게는 이게 핵심 자산입니다. 그런데 유동성이 급해지자 10년 넘게 쌓아온 IP를 계열사인 SLL에 433억 원에 매각했습니다. 방송사가 자기 콘텐츠 자산을 팔아서 급한 불을 끄는 상황, 이미 그 시점에서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부에서는 올림픽과 월드컵 독점 중계권을 무리하게 확보한 탓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7,000억 원 규모를 베팅해서 타 방송사에 리셀(재판매)하려 했는데, 정작 KBS는 120억 원 수준으로만 사 갔고 나머지는 팔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리셀러 전략 자체가 실패한 셈인데, 저는 이게 전략의 실패라기보다 시장 현실을 제대로 못 읽은 결과라고 봅니다. 다른 방송사들도 이미 돈을 못 버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플랫폼 권력이 이미 이동했다

    제가 요즘 TV를 실시간으로 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 꽤 됐습니다.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짧은 영상은 유튜브에서 봅니다. 그리고 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며칠 전에 운동화를 검색했더니, 그다음 날 유튜브에 그 운동화 광고가 뜨더군요. 이게 바로 AI 타겟팅 광고 모델입니다. AI 알고리즘이 소비자의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서 그 사람이 관심 가질 만한 상품을 딱 맞는 타이밍에 노출시키는 방식입니다.

     

    반면 TV 광고는 불특정 다수에게 뿌리는 구조입니다. 시청자가 누군지 몰라도 일단 노출하는 방식인데, 이 모델은 광고 효율이 AI 맞춤형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2025년 기준 국내 지상파 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17% 하락했고, 종편 PPL 광고도 -9.6%를 기록했습니다(출처: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반면 메타(페이스북·인스타그램)의 광고 매출은 같은 기간 24.1% 증가했고, 구글은 11.9% 늘었습니다. 이 숫자만 봐도 광고 시장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쏠렸는지 분명합니다.

     

    플랫폼 권력의 이동이라는 표현이 이 상황을 잘 설명합니다. 플랫폼 권력이란, 소비자와 광고주가 모이는 공간을 누가 지배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KBS, MBC, SBS, 그리고 JTBC 같은 방송 채널이 그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유튜브, 넷플릭스, 인스타그램이 그 자리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뒷단에서 AI 알고리즘을 통해 진짜 수익을 올리는 건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 기업들입니다.


    광고 시장, 코닥의 역사 반복

    JTBC 사태를 보면서 저는 코닥이 떠올랐습니다. 코닥은 필름 카메라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한 회사였습니다.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자기 영역에서는 압도적인 해자(경제적 해자)를 갖고 있었지만 — 여기서 경제적 해자란 경쟁자가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구조적 우위를 뜻합니다 — 시대의 전환점에서 방향을 틀지 못한 것입니다.

     

    JTBC도 비슷합니다. 손석희 앵커 영입으로 프리미엄 브랜딩에 성공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독보적인 보도를 이어가며 KBS·MBC·SBS 등 3대 지상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치까지 올랐습니다. 콘텐츠 역량만 보면 무너질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광고 시장의 판도가 바뀌는 동안, 기존의 성공 방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한국 대기업들이 시대 흐름에 둔감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게 있습니다. 신용등급이 높다 보니 자금 조달 비용 자체가 낮아서, 영업이익률이 낮아도 마진을 남길 수 있는 구조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자금 조달 비용이란 기업이 은행이나 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내는 이자 비용을 말하는데, 트리플 A나 더블 A 등급의 대기업은 이게 워낙 낮아서 큰 위기감 없이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게 오히려 변화에 둔감하게 만드는 독이 된 셈입니다.

     

    전통 미디어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에 뒤처진 핵심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광고 효율: AI 타겟팅 광고 대비 불특정 다수 노출 방식의 한계
    • 시청 행태 변화: 실시간 시청에서 온디맨드(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 중심으로 이동
    • 플랫폼 의존도: 자체 디지털 플랫폼 없이 콘텐츠만 생산하는 구조
    • 데이터 부재: 시청자 행동 데이터를 직접 수집·활용하지 못하는 한계

    AI 시대, 진짜 권력은 데이터에 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플랫폼이 옮겨갔으니 그쪽을 공략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더 들여다보면 넷플릭스나 유튜브 역시 결국 구글·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인프라와 AI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구조입니다. 진짜 권력은 그 뒷단에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클라우드 인프라란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대규모 서버 시스템을 의미하는데, AI 알고리즘이 작동하려면 이 인프라 위에 쌓인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금 AI 산업의 현실을 보면, 엔비디아 GPU나 한국의 HBM(고대역폭 메모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 시장에서 AI가 실질적으로 창출하는 매출은 아직 100억~200억 달러 규모에 불과합니다.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고 그만큼 회수가 안 된다는 건, 아직 기업 현장에 AI가 제대로 스며들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왜 기업 현장에 AI가 못 들어가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데이터가 없어서입니다. 예를 들어 40년 경력의 엔지니어가 머릿속에 갖고 있는 현장 노하우, 이걸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된 데이터가 없는 것입니다. 매뉴얼 몇 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수십 년간 내린 판단들이 데이터로 쌓여야 진짜 산업용 AI가 작동합니다. 그 데이터 인프라를 누가 먼저 구축하느냐가 앞으로의 경쟁력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출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JTBC가 직면한 위기가 방송 산업 하나의 문제로 그칠지, 아니면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 기업들이 앞으로 줄줄이 겪게 될 예고편일지, 저는 후자에 무게를 둡니다. 어쩌면 대기업이라서 오히려 더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한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등치가 크면 방향 전환에 시간이 더 걸리니까요.

     

    JTBC가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 나갈지, 그리고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방송사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애청자였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크지만, 감정보다는 지금 이 흐름이 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게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