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기준, 스테이블 코인을 제외한 글로벌 RWA 시장 규모가 265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2023년 말 19억 달러에 불과했던 시장이 2년 남짓 만에 13배 이상 불어난 겁니다. 실물 자산 토큰화가 이렇게 빠르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토큰화, 어떻게 작동하는가
RWA(Real World Asset), 즉 실물자산 토큰화란 부동산, 채권, 예술품처럼 현실에 존재하는 자산을 블록체인 위의 디지털 토큰으로 변환해 유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토큰화란 하나의 자산을 잘게 쪼개 여러 투자자가 지분 형태로 보유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고흐의 해바라기 원작은 수백억 원이 넘어 일반인이 살 수 없지만, 그 작품을 1만 개의 토큰으로 나누면 한 조각은 몇만 원 수준이 됩니다. 강남 아파트 한 채를 통째로 살 수 없어도, 그 아파트의 지분 토큰 몇 개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들여다봤는데, 생각보다 복잡한 과정이 존재했습니다. 미국 국채를 토큰화한다고 가정하면, 먼저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를 설립합니다. 여기서 페이퍼 컴퍼니란 실제 영업 활동 없이 자산 보유만을 목적으로 세운 법인을 의미합니다. 이 법인이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실제 미국 국채를 매입하고, 회계법인 같은 제3자가 자산 보유 사실을 검증합니다. 검증이 끝나면 그 가치에 해당하는 토큰이 블록체인 위에서 발행됩니다. 시큐리타이즈(Securitize) 같은 스타트업들이 이 검증과 발행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RWA는 완전히 탈중앙화된 시스템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구조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중간에 반드시 사람이 개입합니다. 블록체인은 투명성과 속도를 담당하지만, 기초 자산의 실재 여부는 결국 기존 금융 방식의 감사와 검증에 의존합니다.
RWA 토큰화가 가져오는 주요 장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소액 투자자도 고가 자산에 접근 가능 (시장 접근성 향상)
- 금이나 예술품처럼 물리적 보관이 필요한 자산을 디지털로 편리하게 거래
-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 기반 자동화로 거래 속도 단축
- 24시간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실시간 거래 가능
- 전통 투자 전략과 디파이 전략을 결합한 유연한 포트폴리오 구성
디파이가 RWA를 선택한 이유
RWA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2022년 블록체인 시장의 혹독한 침체기였습니다. 당시 디파이(DeFi) 생태계는 유동성 고갈로 사실상 멈춰 있었습니다. 여기서 디파이란 은행 같은 중앙 기관 없이 블록체인 위에서 예금, 대출, 거래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이더리움 기반의 대형 디파이 프로토콜인 메이커다오(MakerDAO)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자체 스테이블 코인을 예치한 사용자에게 연 5%의 고정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이자의 원천을 궁금해했는데, 메이커다오는 사용자로부터 예치받은 스테이블 코인으로 미국 국채를 매입해 그 수익을 이자로 돌려주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당시 미국 국채 수익률이 5~6%대에 달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 구조는 충분히 작동했습니다.
이 시도가 큰 반향을 일으키자, 다른 디파이 프로토콜들도 앞다투어 자금을 미국 국채에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이플 파이낸스(Maple Finance)는 사용자로부터 스테이블 코인을 조달해 비트코인 채굴 기업이나 단기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RWA 상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온도(Ondo Finance), 에테나(Ethena)가 만든 컨버지(Converge), 그리고 플럼 네트워크(Plume Network) 같은 프로젝트들은 RWA 특화 레이어1 인프라를 구축하며 이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러 RWA 프로젝트를 살펴보면서 느낀 건, 이 시장이 단순히 수익률 경쟁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에 전통 금융의 신뢰 구조를 결합하려는 시도 자체가 꽤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유동성의 함정, 제가 경계하는 이유
미국 국채 기반 RWA 상품은 일반적으로 연 4% 내외의 수익률을 제공합니다. 국내 은행 예금 금리가 현재 3%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조건입니다. 유럽처럼 기준금리가 낮은 지역에서는 이 격차가 더 벌어지기 때문에 RWA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수요가 한국보다 훨씬 높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시장을 보면서 한 가지 부분을 계속 경계하게 됩니다. 바로 유동성(Liquidity) 문제입니다. 여기서 유동성이란 자산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가격으로 현금화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주식 시장에서는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의 격차인 스프레드(Spread)가 좁아서 언제든 비교적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습니다. 그런데 RWA 토큰이 거래되는 장외 2차 시장에서는 이 스프레드가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투명하고 빠른 거래가 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인데, 막상 토큰을 팔아야 할 때 매수자가 없으면 그 장점이 무의미해집니다. 급전이 필요해 당장 현금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값을 못 받고 헐값에 던져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겁니다. 수익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건 원금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시장에는 항상 그 틈새를 파고드는 함정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RWA는 분명 가상자산에 독특한 가치를 가져다주는 개념입니다. 실물 자산과 블록체인을 잇는 이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진다고 해서 모든 상품이 안전한 건 아닙니다. 어떤 자산이 기초 자산으로 묶여 있는지, 2차 시장에서 실제 유동성이 얼마나 확보되어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투자 결정은 반드시 본인의 판단과 전문가 상담을 통해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