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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상하이에서 열린 'WAIC 2026', 단순히 '세계 인공지능 대회'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살펴보니 많이 달랐습니다. 시진핑이 직접 개막식 연단에 섰고, 상하이에서는 29개국이 서명한 국제기구가 하루 만에 탄생했으며, 그 무대에서 한국이 먼저 그리고 있던 그림을 중국이 먼저 실행해 버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WAIC 2026은 세계 인공지능 대회가 아니라, AI 외교전쟁의 현장이었습니다.

WAIC 2026: AI 외교의 시작
세계 인공지능 대회(WAIC)는 2018년부터 중국 정부와 상하이시가 공동 개최해 온 국가급 AI 행사입니다. 올해로 9회를 맞이했는데, 이전까지는 리창 총리가 대리 참석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시진핑 주석이 직접 개막식 연단에 섰습니다. 이 뉴스를 봤을 때 '아, 이건 단순한 행사 참석이 아니다'라는 느낌이 바로 왔습니다.
연설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중국 제조(中國製造)'를 '중국 지조(中國智造)'로 바꾸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한자 제(製)를 지(智)로 바꿨을 뿐인데, 그 무게가 상당합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려 온 중국이 이제 AI 자체를 '메이드 인 차이나'로 만들겠다는 선언이니까요. 단순 제조업에서 지능형 산업으로의 전환을 국가 최고 지도자가 공식화한 것입니다.
시 주석은 또 '피지컬 AI(Physical AI)'라는 개념을 직접 언급했습니다. 피지컬 AI란 디지털 공간에만 머물던 AI가 로봇, 제조, 물류 같은 물리적 세계로 확장되는 흐름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ChatGPT처럼 화면 속에서 대화하는 AI가 아니라, 실제 팔다리를 가진 기계가 움직이는 세상을 겨냥한 것입니다.
그런데 연설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AI 발전이 어느 한 국가의 독주가 아닌, 세계가 함께 연주하는 교향곡이 돼야 한다"고 했고, "줄 하나로는 음악을 이룰 수 없다"는 중국 속담까지 인용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협력과 개방을 강조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이 연설이 나온 시점이 묘했습니다. 시 주석이 연단에 서기 불과 몇 분 전, 트럼프 대통령이 TV 연설에서 중국이 미국 유권자 파일 2억 2천만 건을 빼돌렸다고 정면으로 비난하고 있었거든요. 같은 시간, 두 연단에서 완전히 다른 서사가 동시에 펼쳐졌습니다.
- 시진핑의 WAIC 직접 참석: 2018년 이후 처음, 사실상 국정 연설급 위상
- 중국 지조(中國智造): 제조 중심에서 AI 중심으로의 국가 전략 전환 공식 선언
- 이중 청중 전략: 미국을 향한 견제 메시지 + 글로벌 사우스를 향한 구애 메시지
글로벌사우스를 향한 계산
행사 전날인 7월 16일, 29개국이 세계 인공지능 협력기구(IACO)의 설립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여기서 IACO란 International Artificial intelligence Cooperation Organization의 약자로, 본부를 상하이에 두는 정부 간 국제기구입니다. 중국 외교부장이 직접 서명했고, UN 사무총장도 서명식에 참여했습니다. 불과 1년 전 WAIC에서 설립 제안이 나왔을 때 어느 나라도 공식 가입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1년 만에 29개국을 모아 기구를 출범시킨 겁니다.
창립 회원국 면면을 보면 러시아, 벨라루스, 쿠바,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프리카 10개국, 아시아 12개국입니다. 미국, 유럽 주요국, 일본, 한국은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평가가 갈립니다. 서방 주요국이 중국 주도 기구에 들어갈 가능성이 낮으니 반쪽짜리 기구가 될 것이라는 회의론이 있고, 반대로 기존 EU AI법이나 G7 논의에서 발언권조차 없었던 개발도상국들이 처음으로 규범을 함께 만들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는 긍정론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중국은 인터넷 시대에 표준이 이미 다 정해진 이후에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QR 결제가 중국에서 폭발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카드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이었고, 빈 땅이었기에 새 표준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번에는 AI라는 새로운 인터넷이 열리는 시점에 표준을 선점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 전체를 지칭하는 표현인데, 이들 지역에 AI 인프라가 중국 주도로 깔리면 데이터와 표준, 프로세스가 자연스럽게 중국화 됩니다.
또 학계 측에서는 튜링상과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 아홉 명이 무대에 섰고,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의 대부로 불리는 리처드 서튼 교수가 공동 의장을 맡았습니다. 강화학습이란 AI가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최적의 행동을 학습하는 기법으로, 현재 AI 고도화의 핵심 엔진입니다. 딥러닝 석학 요슈아 벤지오 교수도 UN AI 거버넌스 체계 소개를 담당했습니다. 정치·산업·학술 세 트랙에 각기 다른 손님을 정교하게 배치한 판 짜기였습니다(출처: UN AI 거버넌스 공식 페이지).
한국의 기회와 속도
사실 이 그림, 한국이 먼저 그리고 있었습니다. 올해 3월 우리 정부는 WHO, ILO, UNDP 같은 UN 산하 여섯 개 기구와 글로벌 AI 허브를 한국에 유치하는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습니다. 우리 외교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국회에 유치위원회가 꾸려졌고, 5월엔 서울에서 비전 선포식도 열렸습니다. UN 산하 아홉 개 기구와 세계은행까지 참여해서 '모두를 위한 AI'라는 이름으로 기후, 보건, 식량, 난민 문제에 AI를 적용하는 국제 플랫폼을 구상했습니다.
구상 자체는 탄탄했습니다. 미국이 60개가 넘는 UN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며 생긴 공백, 그 빈자리를 한국이 신뢰받는 가교로 메우는 그림이었으니까요. 이 구상을 들었을 때 '이건 진짜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논리가 명확했습니다. 미국은 거부하고 중국은 불신받는 상황에서 한국이라는 존재는 꽤 강력한 포지셔닝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체화되기 전에 중국이 선수를 쳤습니다. 중국이 가는 트랙과 한국이 가는 트랙은 좀 다릅니다만. 중국은 UN 밖에 자체 기구를 새로 만드는 방식이고, 한국은 UN이라는 정통성 안으로 기구들을 끌어오는 방식입니다. 접근법의 차이가 있는 만큼 경쟁 구도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같은 글로벌 사우스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는 점에서, 누가 더 먼저 실질적인 신뢰를 쌓느냐의 싸움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화웨이의 아틀라스 950 슈퍼포드(Atlas 950 SuperPod)도 이번 행사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자체 개발 어센드(Ascend) 칩을 최대 8,192장까지 광통신으로 묶어 하나의 시스템처럼 작동하게 만든 구조입니다. 칩 한 장 성능으로 엔비디아를 이기기 어려우니 중급 칩 수천 장을 시스템 차원에서 엮는 방식으로 우회하는 전략인데, 이것도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재에 대한 시스템 엔지니어링적 응수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유니트리(Unitree)가 공개한 GD1 로봇도 있었습니다. 키 2.7m, 무게 500kg이 넘는 대형 탑승형 로봇으로, 두 발과 네 발 자세를 전환하며 사람이 올라탈 수 있는 세계 첫 양산형 로봇을 표방합니다(출처: 화웨이 어센드 공식 페이지).
이런 기술 시연들이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실물 증거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도 속도감을 높여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자칫하면 글로벌 AI 거버넌스에서 한국이 유엔 사무소 하나를 운영하는 수준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WAIC는 매년 열리는 건가요, 올해가 특별한 건가요?
A. WAIC는 2018년부터 매년 상하이에서 열리는 중국 국가급 AI 행사입니다. 올해가 특별한 건 시진핑 주석이 개막식에 직접 참석한 첫 해라는 점입니다. 이전까지는 리창 총리 등이 참석했는데, 최고 지도자가 직접 나섰다는 건 정치적 무게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단순 박람회가 아닌 국정 선언의 무대로 격이 높아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Q. IACO가 실제로 힘을 가진 기구가 될 수 있나요?
A. 미국, EU, 일본, 한국 등 서방 주요국이 빠진 상황이라 회의적인 시각도 많습니다. 다만 기존 AI 거버넌스 논의에서 발언권이 없었던 개발도상국들이 규범 형성에 참여할 수 있는 첫 창구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향후 5년간 개도국 인력 5,000명 AI 연수, 6개 지역 AI 협력 센터 구축 같은 구체적 패키지를 내걸었는데, 실제 이행 여부가 기구의 신뢰도를 결정할 것입니다.
Q. 중국이 개도국에 AI를 무료로 지원하는 이유가 뭔가요?
A. 선의만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AI 인프라가 깔린다는 건 데이터, 표준, 운영 방식이 함께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인터넷 시대에 카드 인프라가 없었던 중국에서 QR 결제가 표준이 된 것처럼, 지금 AI 인프라를 선점하는 국가가 해당 시장의 표준을 장기적으로 장악하게 됩니다. 개도국 입장에서는 AI가 대체재가 아닌 유일한 선택지인 경우가 많아 채택 속도도 빠릅니다.
Q. 한국의 글로벌 AI 허브 전략, 지금도 유효한가요?
A. 전략 자체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중국이 UN 밖에 자체 기구를 만든 것과 달리 한국은 UN이라는 정통성 안에서 움직이고 있어, 서방 국가들과의 협력 가능성이 높은 다른 트랙입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중국이 1년 만에 29개국을 모아 기구를 출범시킨 것처럼, 구상을 실행으로 옮기는 속도가 이 경쟁에서의 핵심 변수가 될 것입니다.
결론
WAIC 2026을 깊이 살펴볼수록 이것은 단순한 AI 전시회가 아니었습니다. 기술 경쟁이 표준 경쟁이 되고, 표준 경쟁이 외교 경쟁이 되는 흐름이 이번 행사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AI 규범을 두고 각자의 진영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냉전 시절 동서 진영의 철도 궤도 폭이 달랐듯 디지털 표준이 두 갈래로 나뉘는 시나리오도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수출 중심 경제인 한국에게 이건 상당히 불편한 미래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UN 기반 AI 허브 전략이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거부하고 중국은 불신받는 상황에서 신뢰받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포지셔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중국이 이미 선수를 친 만큼, 구상을 실행으로 옮기는 데 속도가 필요합니다. 이 흐름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